Chapter 78
1.
“……진짜로 쉬러 온거였어?”
이로하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땐, 대충 한 시간 가량이 흘러있을 시점이었다.
직후, 이로하는 크게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진짜 이 상황 속에서 낮잠을 잤다는 것을 자각하고 한 번, 그리고 자신이 깨어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잠들어있는 실크의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하, 살다살다 이런 경험도 다 하네요.”
심지어 대체 얼마나 친해진 것인지 이부키를 자신의 몸 위에- 정확히는 가슴과 배 위에 올려놓은 채로 편히 잠들어있는 모습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자고 있던건지.
이부키도, 실크도 천진난만하게 꿈나라로 빠져있는 모습은 묘하게 멍하니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음냠냠….”
이부키는 아이다운 잠꼬대를 했으나, 실크는 그 어떤 소음조차 내지않고 침묵하며 잠들어있는 모습.
몇 번이고 다시봐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니, 신기하기보단 진귀하다고 해야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미소를 흘리던 이로하는 이내 실크의 신체 어느 한 부분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신체부위 중에서 유독 툭 튀어나온, 저절로 시선이 이끌릴 수밖에 없는 부위를 말이다.
“음.”
……가슴 크기가 무슨.
얼마나 가슴이 크면 배게 역할이 되는걸까.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머리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텐데 여전히 형태가 유지되는 모습. 슈트를 입고 있어서 그런걸까? 가슴이 커본 적이 없던 이로하로썬 알 수 없는 미지의 정보였다.
…….
그만하자. 나 자신이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슬슬 깨워야겠네요.”
시간이 늦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그냥 이 이상 실크를 이곳에서 자게 냅두기엔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쉬는 법을 배우러와놓고 잠만 잘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애초에 왜 자신한테 배우러 온건지 모르겠지만.
‘저, 그렇게나 바깥에서 게으르다고 소문이 나 있기라도 한건가요? 그게 아니면, 혹시 실크가 저의 뒷조사라도……?’
생각해보니 그건 좀 아닌거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래보여도 도시의 영웅이지 않은가. 내가 이 사람의 모든걸 아는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거 같았다.
…단순히 이부키가 말해줬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어째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면이 분명한 두 사람 사이의 친근감은 평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이부키가 언니 동생하면서 다가갔던 사람이 존재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조차 이부키와 친해지는데 조금의 시간은 걸렸기에.
실크가 살짝 부러웠다.
내심 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게 질투라는 감정인가요?”
이로하는 그리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이부키의 마음을 훔쳐 간 실크에 대한 약간의 복수심이랄까, 장난기가 치솟은 이로하는 소악마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내, 실크의 옆구리로 목표를 고정하고 빠르게 손을 내질렀다.
텁-!
아니, 시도에만 그쳤다.
“히엑……?!”
“아, 이로하 씨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 어, 어떻게………?”
이로하의 손은 목표에 닿기도 이전에 막혀버렸다.
그것도, 목표였던 실크의 손에 의해서.
“제가 워낙 감이 좋아서. 느껴지더라고요.”
“…….”
이로하는 어느새 붙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돼요.’
…분명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이걸 눈치채고 붙잡은거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 빠른 상황 판단,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오직 손만을 움직였는지 실크의 가슴 위에서 깨지않고 잠들어있는 이부키의 모습마저도 그녀의 충격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하암, 저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네요. 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 아지트 되게 편하네요. 가끔씩 찾아오고 싶을 정도에요.”
“……네?”
“혹시 시간이 빌 때 가끔씩 찾아와도 될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한테 왜 그러는거에요, 당신.
이로하는 마음 속으로 절규했다.
…
…
…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안녕히가세요.”
“멋진 언니! 다음에 또 놀러 와!”
“그럴게요, 이부키. 다음에 또 같이 놀아요.”
“에헤헤, 좋아!”
그 이후로 다시금 휴식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나누다 실크가 일이 있다면서 이별을 고했다.
딱히 연락이 오거나 하진 않은 것으로보아 단순히 자신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배려해준 듯했다. 조금 이상하긴 해도 역시나 영웅답게 선한 인성을 갖추고 있긴 한 모양.
그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이로하도 이부키와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해주었다. 나중에 또 온다는 말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생각 외로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던거 같기도 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실크는 그 말을 끝으로 건물에 거미줄을 발사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로하와 이부키는 입을 떡 벌렸다.
“와아아!”
“무슨 속도가…….”
화면 너머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역시나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 돌아갈까요, 이부키?”
“응!”
그렇게 우리는 갑작스럽던 영웅과의 만남을 마치고 평소대로 만마전 건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로하는 몰랐다.
정확히는 알아채는게 늦었다는 것이 맞으리라.
“마코토 선배! 나 방금 엄청나게 멋진 언니 만났어!”
“……멋진 언니라고? 키킥. 그게 누구지?”
“실끄? 실키? 그 언니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는데.”
“뭣. 서, 설마 이름이 ‘실크’인거냐?”
“어? 마코토 선배, 어떻게 알았어? 대단해~!”
“키키킥. 이 몸이 똑똑하긴 하지. 그래서 이부키, 혹시 실크를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하는가.”
이부키가 얼마나 순수한 아이인지.
또한, 마코토가 얼마나 집착이 심한지를.
“아지트! 이로하 선배랑 같이 놀고 왔어!”
아. 망했다.
입단속을 해놨어야 하는데.
“이로하!!!!!!!!!!”
귓청이 떨어질 듯한 외침에 이로하는 이마를 탁 쳤다. 격렬하게 집에 가고 싶은 이로하였다.
2.
“오랜만입니다, 호시노 선배.”
“……어디서 들어온거야? 깜짝 놀랐잖아.”
다음으로 내가 찾아간 곳은 아비도스였다.
아직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고, 대책위원회 회의실에 놓고갔던 방패도 회수해야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러니까 어디서 들어온거냐니꺄.”
“제가 대책위원회의 모두에게 정체를 밝혀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아…. 알겠어, 알겠다고.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질문부터 하기야? 아저씨 서운해지려고 그러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잠이라도 자드려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히이로.”
“요즘 제 취미에요. 무엇보다 지금 휴식 시기이기도 하고요.”
“아니, 그거랑 같이 자는게 무슨 연관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거야, 대체?”
“……요즘 좀 심심해서. 장난 좀 쳐봤어요. 오랜만에 친한 사람이랑 만나니까 조금 들떴네요.”
“흐. 되게 귀여운 말을 해주네, 히이로 쨩?”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보다 빨리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호시노를 바라보자 그녀는 아까의 내가 그랬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흐음. 아저씨한테 물어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생각할땐 너는 이미 결론을 내린거 같은데.”
그리 말하곤 으헤~ 하며 평소와 같은 나른한 웃음 소리를 내뱉는 호시노였다.
나는 미간을 팍 구기며 작게(아님) 중얼거렸다.
“칫. 눈치만 더럽게 빨라가지고…….”
“……어이,선배한테 그 말투는 좀 아니지 않아? 아저씨 이래보여도 선배라고?”
“후우. 선배도 딱히 반대는 안하시니, 밝혀야겠네요.”
“뭐, 우리 아이들은 모두 착하니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기 귀찮았던게 아니라 알고 있었기에.
대책위원회 멤버들. 그녀들의 우정과 유대, 그리고 성격은 지구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매번 떠도는 ‘만약 키보토스의 학생이 된다면’이라는 주제에 항상 아비도스가 거론되게 할 정도로 유명했기에.
착한 아이들이다. 용기도 있고, 실력도 좋고.
다만 환경만 좋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저도 밝히려고 했던 거니까요.”
“……고마워. 이런 고평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으헤,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있구만!”
그리 말하며 우리는 대책위원회 멤버들이 모여있을 회의실로 향했다.
머리 위에는 여전히 가면을 쓴 채로.
그렇게 호시노의 뒤를 따라 익숙한 회의실 문 앞에 도착했다. 이 문을 열고 난 이후의 반응이 살짝 기대되면서도 떨렸다. 자의적으로 정체를 밝힌게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떨리는 일이었다.
내가 속해있는 –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 슈퍼히어로 업계에선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 자신의 정체를 광고하지 말아라.
– 그것은 슈퍼히어로의 익명성을 해치는 일이다.
내가 모티브 삼은 ‘스파이더맨’이 매번 하는 말로도 유명한 구절이지 않은가.
그래서 난 언제나 ‘익명성’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활동을 해온 것이다. 악을 처단하는 개인이란, 진실 앞에선 사회의 어둠에 짓눌리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언제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건 큰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실이란, 나에게 있어 큰 약점이기도 했으니까.
“후우…….”
“뭐야, 설마 긴장이라도 했어?”
상념을 끊고 한숨을 내뱉자 호시노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 당연한거 아닌가. 놀라기까지 해야 돼?
“저도 사람인데 긴장은 하죠.”
“……그 빌딩만한 괴물을 때려죽여놓고?”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그, 그런걸까나…….”
호시노는 묘하게 당황하며 쓰게 웃어보였다.
이내.
드르륵-
문이 열리고, 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는 아야네,
새침한 표정으로 문쪽을 바라보는 세리카,
귀를 팔랑이며 무심한 눈동자를 빛내는 시로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노노미.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진행되던 회의 소리가 끊어지고, 잠깐의 정적 이후 새리카의 호통 소리가 울려퍼지려던 순간.
“호시노 선배! 늦었잖……!”
“……어?”
“엣? 에에엣……?!”
“실크……?”
대책위원회의 모두는 마찬가지로 문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마주치고 하나의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경악.
이어진 놀라움.
그 다음으로는 정적.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들은 입을 떡 벌린 채로 자신들의 회의실로 걸어들어오는 한 소녀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행동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이윽고, 가면 너머에서 울려퍼진 목소리는.
그녀들이 익히 아는, 어느 소녀의 것이었으니까.
“…….”
“…….”
다만,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
아직까지 대책위원회 아이들이 충격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
그에 내가 당황하며 호시노를 바라보자 그녀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푸후훗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호시노는 이 상황을 예견한 모양.
‘이 인간이?’
아니, 실크로써의 내가 유명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그녀들을 충격 속에서 빼내오는 수밖에.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달칵-
나는 손을 들어올려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언제나의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더욱 눈동자를 키우는 대책위원회의 모두에게 말했다.
“서프라이즈?”
“뭣……!!!!”
“아니, 실크가 히이로였어요─?!!”
“하아아아아─?!!”
“……흐끅!”
역시나, 격렬한 반응들이 터져나온다.
누구는 말문이 막히고, 누구는 내 정체에 경악하고, 누군가는 단순히 당혹에 차 비명지르고, 또 누군가는 너무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반응들은 확실히 못참겠다.
이게 도파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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