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1
1.
사람과 기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유기물로 이루어진 신체와 식량을 연료로 삼아 뇌라는 판단장치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인간.
고철, 혹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신체에 전기를 비롯한 무수한 에너지를 원료로 삼아 컴퓨터를 판단장치로 삼아 학습된 지식으로 기동하는 기계.
혹자는 둘의 차이를 감정여부를 두고 판단할 것이고.
혹자는 생명의 존속성을 두고 둘의 차이를 설파할 것이다.
혹자는 둘의 차이를 단순히 유기물과 무기물로 나누어 지극히 이론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둘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져 구분할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곳, 키보토스에선 후자의 이야기가 옳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기계, 사람처럼 감정을 표출하는 기계, 사람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계.
키보토스에서 기계, 그리고 로봇이란 단순히 외형과 내부 구성이 금속과 전기로 이루어진 또 다른 종족에 불과하다.
허나, 그럼에도.
딱 한가지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감각의 여부일 것이다.
촉각, 시각, 후각과 같은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문명 번성의 근원적인 이유. 인류가 모든 생물들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상상력.
미지를 향한 아득한 두려움, 혹시 모를 변수에 대한 강박적인 경계가 바로 그것이다.
계산과 이성적 판단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합리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인 상황.
그저 감정과 충동으로 인해 발생한 카오스.
‘직감(直感)’이라 불리우는 것이 없다면, 결코 알아차리기 힘든 변화.
지금 이 순간은 그야말로 그러한 상황이었기에.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던 강철 뱀이 숙적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두려움에 느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콰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악!”
“다들 엄폐물에 숨어서 뭐든 꽉 잡아!”
“모래 폭풍이라니, 갑자기 왜……!”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다.
그저 재해(災害)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래 폭풍이 뜬금없이 아비도스 시내를 덮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눈코입을 가리고 몸을 최대한 숙여! 엄폐물이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키고!”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지만 선생의 귓가에서만 울려퍼진 아로나의 외침, 신비를 지닌 이들 특유의 직감이 위험을 전해오자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지켜야 할 시민을 감싸고,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긴다.
혹여나 모래를 삼키거나,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최대한 몸을 보호한다.
본능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여 자신을 보호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행동을 취한다.
“으윽!”
“온다! 전력을 다해서 버텨!”
“블끼야아아악!”
모래 폭풍이 일고 그들이 있는 장소까지 도달하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폭풍의 압력이 몰아치자 학생들과 시민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엄폐물을 붙잡고 몸을 숙였다.
한시라도 빠르게 모래 폭풍이 지나가길 빌면서.
그렇게 폭풍의 습격이 시작된 직후, 그들의 귓가엔 공포만 더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덜컥!
쨍그랑!
쩌저저저적!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고, 박살난다.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던 이들의 귓가에 울려퍼지는 소음.
귀가 멀 것만 같은 바람 소리 사이에 들려오는 재앙과도 같은 소음은 재해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실삼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또한, 그런 그들의 귓가에는 또 다른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오기까지 했으니.
파직!
콰드득!
텅! 텅! 터엉!
그것은 마치 딱딱하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금속에 가까운 것이 비틀리고, 우그러지고, 바닥을 구르는 듯한 소음이었으니.
지금 이 일대에 저런 소음을 낼 금속이 있던가?
혹은, 강철 뱀이 또 다른 행동이라도 한 것일까?
절로 상상력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음의 연속.
당장이라도 그 진실을 확인하고픈 그들이었지만, 모래 폭풍 속에서 고개를 들어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자상행위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그들은 그저 속에서 피어나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한시라도 빨리 모래 폭풍이 지나가길 빌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체감 상으론 몇십 분이나 흐른 듯한 시점.
“……?”
엄폐물에 몸을 숨기던 이들은 돌연, 강철 뱀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가 약해짐을 느꼈다.
사아아아…….
점차 누그러지던 기세는 이내 완전히 꺾였다.
모래로 가려지던 시야가 걷히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수한 건물의 잔해와 유리 파편, 그리고…….
자신들의 적이었던 테러화 오토마타들이 오토마타‘였던 것’으로 변해있는 모습들까지.
아까 들렸던 소음이 바로 저것이었구나. 사람들은 그제서야 소음의 진상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충격 먹은 장면은 따로 있었기에.
사람이 더 큰 충격을 받으면 그보다 덜한 충격에는 무덤덤해진다고 하던가.
지금 상황이 딱 그 말대로였다.
“어?”
“자, 잠깐 저거……!”
“분명, 건물로 날아갔던게……?”
그러나 그 충격이란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충격을 넘어 환희와 희망이 마음 속에 들어차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혹스럽지만, 그럼에도 절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실크─!!”
어느 한 소녀의 외침에 그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환호 속에서 전신에 피를 한바탕 뒤집어 쓴 채, 상처로 가득한 영웅이 고개를 들었다.
가면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는 실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분위기 뿐만이 아니다.
분명 일반적이라면 결코 일어설 수 없는 상처로 가득한데 실크는 멀쩡히 두 다리로 서있었다.
더 나아가, 차고있던 건틀렛을 비롯한 장비도 모두 벗어던진 채 맨주먹으로만 나선 상태.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지금 이 순간의 실크가 강철 뱀에게 패배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직감. 그것을 일종의 직감이었다.
실크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또한 성장했다는.
그런 직감.
갑작스런 영웅의 등장에 비나를 비롯한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바라는 것은 결국 똑같지.”
돌연 실크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이내 비나가 있는 장소로 발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다른 이들이 눈으로 쫓기도 힘든 속도로.
이전보다 더, 지금까지보다 더욱 빠르게.
그리고 강력하게.
투콰아아아앙─!!!
실크의 주먹이 비나의 목을 꺾었다.
2.
서늘한 바람. 낙엽이 지며 겨울의 추위가 점차 다가오는 시기.
그 날은 가을의 날씨에 걸맞지않게 비가 내렸다.
이때의 나는 창문 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광경을 그저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기론 이때의 나는 유독 감성적이었던 것만 같다.
아니, 그러한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한없이 공허했다.
마치,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이 기억인지, 인연인지, 혹은 능력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처음으로 눈을 뜬 순간에 느끼게 된 허무함만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잠에서 깨어나 깨달았다.」
「내가 이상한 세상에 떨어졌음을.」
그저 단편적인 문장만이 머릿속에서 흘렀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지금 이 ‘기억’은 내가 모르는 것이라고.
이 순간, 이 장면, 그리고 저 문장들까지.
내가 이름을 잃어버렸듯이.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무언가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나는 이 장면이 환영임을 알았다.
“이 순간은 너의 또 다른 갈래이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과거임을 알았다.
“너의 흔적이자, 시작의 참된 모습을 보아라.”
언젠가 내가 마주해야 할 아득한 비밀임을 알았다.
“공허함! 너의 근본은 결국 공허함이었으니 이제 그 공허를 채워야만 하지 않겠느냐?”
깨달음을 얻자, 환영 속 자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선택을 해야만 하겠지.”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진정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거라.”
직후,
소설의 페이지가 넘어가듯 장면이 달라졌다.
3.
「제발, 기도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니,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누구든 좋습니다.」
소설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시간은 흐른다.
내가 보고있는 이 환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현재를 보았고, 다음엔 과거를 보았다. 그렇다면 이젠 미래를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목소리가 내게 지식을 담아주었다.
하나의 페이지, 한 번의 넘김, 그리고 하나의 순간.
각 페이지에는 모두 다른 시간대의 ‘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페이지는, 어쩌면 내가 제일 절망하고 있으며 동시에 광기에 젖어있었을 시기.
어쩌면, 내가 ‘도달할지도 모르는’ 순간의 나.
어쩌면, 진실로 내가 한번 ‘겪었을지도 모르는’ 순간.
내가 망각했던 과거, 혹은 미래의 장면을 보았다.
환영 너머를 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온통 잿더미와 불길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한없이 절망하며, 누군가에게 호소하였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주십시오…….」
「부디, 부디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쌓아올린 것들이 무가치한 먼지가 되지않게 해주소서…….」
지옥. 환영 너머의 풍경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진 무지하고도 가련한 어린 양이자, 아둔한 중생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나로썬 저렇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결여된 세상의 결말이다. 이 세상은 그만큼이나 위태로운 세상이야. 너는 이런 지옥의 단면 속에서 그들 모두를 구할 수 있겠느냐?”
인류가 쌓아올린 탑이 무너졌다.
긍지도, 질서도, 미덕조차 남지않은 광기.
도시의 모든 것이 뒤틀린 최악의 가능성.
두렵다. 저것이 나의 가능성 중 하나라니.
내가 정녕 저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저것이다.”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환영을 가르켰다.
환영 속의 나 자신은 그 누구도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하여, 그는 행동에 나서기로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그저 죽음과 절망만을 겪게 된 나는 무엇을 할까?
…….
모르겠다. 정말 짐작이 안갔다!
나는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환영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놀라우면서 동시에 한탄스럽기 그지없는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모두를 천상의 영역으로 이끌겠다.」
「만인을 구원하여, 그들을 위한 목장을 만들겠다.」
이성이 아닌 광기와 충동으로.
환영 속 자신은 ‘어떠한 존재’에게 소원했다.
나, 그리고 모두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을!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은 네가 마주해야 할 원죄이니.”
나는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구이길래 저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십니까.
무슨 이유로 나에게-
목소리가 답했다.
“나는 너의 영혼이요, 불꽃이며, 이상향이다. 그리하여 내가 너의 특이점이다.”
“그러니 가거라. 가서 네가 해야할 일을 행하라.”
“그것이, 네가 기억해야 할 유일한 것이니.”
─텁.
페이지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의 시야가 검게 물들며 목소리가 끊겼다.
…
…
…
4.
그렇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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