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8
1.
‘돈키호테’라는 책이 있다.
내가 살던 지구에서 기사문학으로 분류되어 문학사의 고전을 대표하는 책이라 평가받는 작품이었다.
중세시대에 수없이 출판되던 기사문학 장르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더 나아가, 마음 속에 섬기게 될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다.
단순히 책이 재밌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 내 신념의 근간을 형성하게 한 어떤 문장이 있었기에.
그것은 돈키호테를 대표하는 명대사였고,
내가 섬기고 실천해야 할 가치관이자 신념이었다.
–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꾸고,
–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 견뎌낼 수 없는 고통에 몸을 던지며,
–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붙잡자.
그렇기에,
이 순간에 이르러 그 문장을 다시금 새겼다.
파지지지지직──!!!!!
살벌한 푸른 빛이 터져나오고, 순식간에 내 몸은 끔찍한 고통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전신을 찢어놓을 것만 같은 전류가 육신에 흐르자 곧장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더 있다간 내 전신이 타들어가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전류를 끊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전신을 휘감았다.
…….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도피하고 싶다는 충동이 고개를 세웠듯, 또 다른 충동 하나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치켜들었기에.
물러서고 싶지 않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
비겁하게 도망치는 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좆같은 후회하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무력감 따위 느끼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었다.
그저,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원하는 대로.
내가 추구하는 히어로답게, 전생과 달리 호쾌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추레하게 적을 앞에 두고 물러서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따위 고통에 무너져 내리고 싶지 않았다.
위기를 이겨내고, 멋있게 모두를 구하고 싶었다.
이것은 의지이자, 동시에 후회였다.
과거에는 이루지 못했던 것들, 줄곧 마음 속에서나 품고 있었던 이상(理想), 이룰 수 없었던 꿈.
허상이 현실로 된 이 순간에서야, 지금껏 도망치고 숨어살던 나 자신을 버리고야 말겠다는 갈망.
하여,
내 신념의 근간이 된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강적과 싸우겠다.
고통 속에 몸을 내던지며, 내가 갈망하던 별에 손을 뻗겠다.
더 나아가 그것을 붙잡고야 말겠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심(決心)이었다.
2.
파지직─!
빛이 있었다.
영웅이 쏘아올린 한 줄기의 빛.
그 광경은 지금껏 영웅이 보여주었던 그 어떠한 광경들과 비교해도 가장 경이롭고, 아득한 것이었다.
만일 지금이 늦은 저녁이었다면 한순간에 낮이라 여겼을 정도로 막대한 광량(光量)이 터져나온다.
이어서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천둥의 울림이 이어지더니, 무수한 전기 다발이 강철 뱀에게로 쏟아지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
영웅의 손에서 뻗어나간 푸른 스파크가 강철 뱀의 상반신을 감고 올라가며 푸른 빛을 토해냈다.
전투로 인해 먼지와 모래로 가득해진 아비도스 시내 일대를 한순간에 창백한 푸른 빛으로 덮을 정도의 섬광이 연이어 번뜩인다.
압도적인 기세와 함께 쏟아진 스파크는 다행스럽게도 그 위용에 걸맞게 강철 뱀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Kraaaaaaaaa───!!!!!]
스파크에 지져지자 검게 그을리는 강철 뱀의 몸체.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울려퍼지는 괴성과 강철 뱀이 몸부림치며 주변 건물이 무너지는 광경까지.
처음 순간 실크가 내지른 일격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강철 뱀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머리에 달라붙은 실크를 떼어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진 발작이 스파크가 몰아치는 내내 이어졌기에.
그 모든 장면이 드론의 카메라를 넘어 키보토스 전역에 퍼져나갔다.
파즈즈즈즉──!!
콰과과과과과과과───!!!!!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광경.
거대한 괴물에 맞서 싸우는 한 영웅, 천둥을 몰고오는 어느 신화 속 신처럼 실크는 그야말로 천둥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힘을 선보였다.
그러나.
파지지지지직──!!!
동시에 화면을 지켜본 시민들은 깨달았다.
“커헉……!!”
자신들의 희망인 영웅은 결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강적을 물리치기 위해 내지른 공격에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어 피를 토해내는 영웅의 모습이 보였다.
끔찍한 몰골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려가면서 스파크 속에서 굳건히 서 있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더 나아가.
끔찍한 격통 속에서 전신을 떨면서도, 비명 한번을 내지르지 않고, 괴물을 죽이겠다는 일념을 선보이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웅의 정신이.
고결하면서도 경이롭기까지 한 정신력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가면 아래로 흘러내는 붉은 선혈.
전류로 인해 곳곳이 찢겨나가는 코스튬.
그녀가 착용한 모든 장비가 고압 전류에 노출되며 박살나는 광경들이 이어진다.
“끄, 으으읍………!!!”
돌연, 화면 너머에서 잡히는 실크의 고통 어린 신음에 키보토스의 모두는 새삼 경악하였다.
대충 보아도 몇초만에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류다. 그걸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정신력이란 말인가?
저것이 정녕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
피를 토해내면서, 전신이 엉망진창이 되면서, 당장이라도 손을 놓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면서도.
“큭, 흐읍……!!”
그럼에도, 영웅은 괴물에게 뻗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붙잡고 있겠다는 듯 여러 가닥의 거미줄로 자신을 옭아매면서, 한 손으로는 스파크를 토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비나의 등허리를 가격하였다.
콰앙─!!
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굵어질수록 비나를 가격하는 주먹 또한 강해졌다.
마치, 자신의 고통을 원동력으로 삼듯이.
일격. 또 일격.
한 번의 공격이 쌓여갈 때마다 비나의 몸부림은 더욱 거칠어졌고, 아예 아비도스 시내에서 벗어나겠다는 듯 몸체를 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콰앙─!!
다시금 내리쳐진 일격이 비나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 어떤 행동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실크가 내리는 철퇴는 연이어 비나의 안면을 후려쳤다.
“흐아아아아-!!!!!”
이제는 괴성이라 표현해야 할 괴성이 실크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실크는 그저 한없이 비나를 향해 스파크를 토해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콰앙─!!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비나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이어가겠다는 듯.
콰앙─!!
시민들의 시선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실크의 압도적인 무력과 실력, 그리고 구원 행위에 감탄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실크의 고귀한 정신에 존경을, 경외감을 품어야만 했다.
그만큼 실크가 보여주는 광경은 처절하였고, 그녀의 희생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실감하게 하였기에.
이제 환호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침묵하며 그녀의 격전을 지켜보았다.
그 숭고함의 빛을 한시라도 눈에서 떼지 않겠다는 듯이 강렬한 시선으로 화면에 집중하였다.
콰아앙─!!
주먹이 내질러지고, 피가 튀었다.
비나의 괴성 위로 실크의 괴성이 얹어졌다.
어떤 것으로든 비나를 압도하겠다는 실크의 의지가 화면 너머로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하여, 실크의 주먹 한 번에 시민들의 간절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 간절함이 닿았을까, 실크는 더욱 강하게 비나를 향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점차 그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푸른 스파크 위로 건틀렛이 떨어질 때마다 비나의 왼쪽 눈가의 갑판은 점차 깨져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주변을 감싸던 강철판을 전부 뜯어내고 드러난 눈깔을 향해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Kiaaaaaaaaaa──!!!!]
비나의 한쪽 눈들이 완전히 으스러지고, 등허리의 갑판이 스파크에 지져져 박살나자 녀석의 머리 위로 떠오른 헤일로에 노이즈가 일기 시작했다.
스파크 공격이 비나 녀석의 메인프레임에 큰 부하가 걸릴 정도의 공격이었음을 증명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지금의 공격으로도 비나의 숨통을 끊어내진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바.
화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표정에 일순 초조함이 깃들었다. 이 순간이 지속되면 언젠가 실크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까봐, 자신들의 영웅이 저 괴물에게 패배할까봐 하는 걱정이 깃들었다.
하여, 어느새 시민들이 화면을 지켜보는 자세는 주먹을 꽉 쥐며 환호하는 것이 아닌.
양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제발, 제발 좀 쓰러져라……!”
“실크 지면 안 돼!!”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하면……!!”
그러나.
사람들의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일까.
하늘은 그들의 바램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투콰아아앙─!!
“…어?”
“이게, 무슨-”
사람들의 기도와 반대로, 화면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울림의 충격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이내 화면에 잡힌 것은 무언가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지는 실크의 모습.
고통에서 벗어나자 노호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치켜드는 강철 뱀의 모습.
그리고.
“실크──!!!”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과 고층 건물에 쳐박혀 실크가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영웅이 추락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키보토스가 얼어붙었다.
그 순간, 시민들은 희망이 꺾이고 절망이 마음 속에 들어차는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아득한 어둠 속에 사로잡히는 듯한 꺼림찍한 감각.
그에 모두가 소리쳤다.
“안 돼!!!!!”
입 밖으로 부정의 소리가 내뱉어졌지만, 화면 너머의 현실은 비참하게 시민들의 희망을 묻었다.
3.
같은 시각.
“당, 신……?”
[……실크? 아, 아아. 안돼요, 실크!]
실크의 지시로 시내 인근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피를 돕던 와카모의 히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들의 반응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몰려들었으나 이내 흩어졌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동일한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영웅이 괴물에게 공격받아 추락했다.
그 장면이 키보토스 전역에 송출된 직후, 순식간에 절망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속출했다.
와카모와 히마리도 그들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다만, 실크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
또한 마찬가지로 실크와 같은 시내에서 테러화 병사들과 싸우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실크─!!!”
“안 돼……!!”
“이 빌어먹을 고철 자식이!!”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는게 선생과 히나, 그리고 아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격정적인 반응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분노, 경악, 불안, 그리고 절망.
수많은 감정이 한 자리에서 뒤엉키며 혼란을 낳았다.
심지어는 늘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을 보이던 호시노마저 이를 악물며 비나를 노려볼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
그 중심에 서있던 선생은 침묵하며 주변을 살폈다.
같은 공간에서 보호받던 시민들의 절망 어린 비명.
무수한 테러화 병사들의 습격에 다치고 지친 학생들의 불안 섞인 고성.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나의 단말마까지.
희망의 빛이 사그라들자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절망 뿐이었다.
각 학원의 최강자라 불리우는 히나와 호시노가 남아있었지만 선생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테러화 병사들만, 혹은 비나만 있었다면 모를까.
둘 모두가 있는 현 시점에서 승산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설령 승리하게 되더라도 비나의 공격으로 아비도스 시내는 쑥대밭이 되고 말겠지.
이 상황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영웅이 사라졌다고, 그저 절망에 빠지고 모든걸 포기해야만 하는가?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나설 순간이다.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킨다.
선생으로서 학생을 지킨다.
그 의무와 책임을 선생인 자신이 실천하지 않았다.
이는 직무유기이자, 동시에 비겁한 책임 회피였다.
지금껏 선생이랍시고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아무리 영웅이라 불릴지라도 한 명의 학생.
자신은 그녀를 지킬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행하리라.
영웅의, 학생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이제부터 행동하겠다. 선생은 그리 생각했다.
실크에게 의존하던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며, 선생은 모두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
“선생, 앞으로 나서는 건 위험……!”
모두의 걱정을 받는 일반인. 그게 선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모든 우려를 탈피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시간이었다.
스윽-
이내, 선생은 품 속에서 어떠한 ‘카드’를 꺼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줄게, 실크.”
이것으로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선생이자 어른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실크의 고생을 무의미로 만들지 않는 것.
이후 실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버텨내는 것.
그리고 모두의 걱정과 불안을 덜어내는 것.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이유다.
누군가는 이따위 일에 카드를 사용하는 일은 낭비라고 할지도 모른다. 허나, 선생은 그저 웃었다.
이때 나서지 않는다면 선생 실격이지 않겠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막아주마.
‘그것이 어떤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선생은 카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이내 흘러나오는 것은 선명한 빛.
하여, 모두는 보았다.
영웅과 비슷하지만 다른,
선생이 피어올린 선명한 황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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