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
1.
[저기 보이십니까, 여러분? 아비도스에서 나타난 거대한 강철 뱀 괴물의 모습이!]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황입니다……! 아비도스 자치구 인근에 계시는 시민분들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근처 대피소로 이동하시거나, 아비도스에서 멀리 떨어져 주시길 바랍니다……!]
[아, 아앗…! 실크! 실크입니다! 현재 아비도스에 나타난 거대한 강철 뱀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키보토스의 영웅이라 불리우는 실크인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평소에도 아비도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난 실크의 행적을 두고 ‘이번 사태를 미리 예측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과 더불어 카이저에 관한 의혹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과연 실크는 이번 일을 사전에 알고 움직인 것일까요?]
[회피! 회피! 또 회피하는 실크! 머리 뒤에도 눈이 달려있기라도 한 겁니까, 실크는?! 도대체 어떻게 저 모든 공격을 피해낼 수 있는 겁니까!]
[하지만 처음 강철 뱀에게 먹였던 충격파 공격을 제외하곤 전혀 타격이 없는 모습! 마땅한 공격 수단이 준비되지 않은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특별히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요?]
[저희 모두 응원합시다. 실크의 승리를.]
아비도스에서 나타난 ‘비나(BINAH)’의 소식은 순식간에 키보토스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강제적으로 모두에게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도시에 알리고자 하는 누군가가 모든 미디어를 해킹하고, 실크가 비나와 맞서 싸우는 장면을 송출하기 시작했기에.
모든 언론사 및 보도국은 생텀 타워가 복구되기 이전에나 겪었던 전파 납치에 당황했으나, 이내 화면에 드러난 광경을 보곤 헛웃음을 흘려야만 했다.
아오 또 실크구나.
실크의 동료가 또 해킹을 했구나, 하면서 말이다.
당혹스럽고, 때론 짜증스럽기도 한 상황이었으나 그들 대부분이 실크의 활동으로 큰 도움을 받은 바가 있었던 만큼 기가 찬 웃음을 흘리며 넘어갔다.
다른 건 몰라도 실크의 활동만큼은 열렬히 응원하는 이들이 많은 덕이었다.
사전에 베리타스와 이야기했던 ‘방송 준비’가 그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한 바.
그렇게 키보토스의 ‘모든’ 미디어는 강제적으로 실크의 모습을 직관하게 되었고,
이는 대규모 학원인 트리니티도 다르지 않았다.
“……저곳이 히후미 씨가 말씀하셨던 아비도스군요. 하지만 보고받았던 상황과는 꽤나 다른 것처럼 보이네요.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트리니티의 학생회, 티파티의 대표 호스트인 ‘키리후지 나기사’는 마찬가지로 해킹된 TV 화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녀의 곁에서 대화를 나누던 한 소녀, 아지타니 히후미는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에, 에엣…?! 저런 괴물, 들어본 적도 없는데……! 거짓말이 아니에요, 나기사 님! 제가 아비도스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
“후후, 딱히 추궁하려는 생각은 없답니다, 히후미 씨. 그저… 꽤 흥미로운 존재구나, 싶어서 말이죠. 흐음, 우등생인 히후미 씨의 부탁이니 지원 정도는 가능하겠군요.”
“저, 정말인가요……?!”
“사랑은 돌고 도는 것이니. 히후미 씨도 저에게 줄 것이 생길 거 같고요. 후후.”
“아우우…….”
나기사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히후미를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 낮게 미소를 흘렸다.
웃음을 흘림과 동시에 나기사의 시선은 다시금 TV 속 화면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비나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한 영웅에게로 말이다.
“…실크, 인가요.”
나기사의 머릿속에서 지금껏 트리니티에서 수집한 실크에 대한 정보가 떠오르다 이내 지워졌다.
실크는, 자신이 지금껏 보아온 키보토스 사람 중에서 가장 변칙적이고 변화무쌍한 존재였으니까.
아니, 성장이라고 할까. 혹은 진화라고나 할까.
하루가 지날수록 실크가 보여준 무력적 기준점이나 행동양식과 활동 범위들이 달라진다.
대충 실크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정보부의 모두가 두뇌를 싸맨 덕에 어렴풋이 인지하였으나, 트리니티를 대표하는 자신마저도 아득한 것이었다.
‘선인을 구하고 악을 벌한다, 라. 마치 이 세상을 낙원으로라도 만드려는 듯한 목표로군요.’
대체 어느 존재가 저러한 허황된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라며 과거의 자신은 부정했겠지.
하지만 현 시점에 이르러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껏 실크가 보여준 광경들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화두, 당신은 그것에 대답할 수 있을려나요?’
그것은 희망이자, 동시에 질문이었다.
영웅이길 자처한 소녀에게 던지는, 이 세계의 뒤틀림을 정말로 바로잡을 수 있겠냐는 시험이었다.
“…기대되네요.”
실크가 언젠가 모든 키보토스의 자치구를 방문하고자 한다면 우리 트리니티에도 오게 되리라.
그 순간이 진정으로 기대가 되는 나기사였다.
“부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려주시길.”
“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나기사 님?”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히후미 씨. 단지 화면 너머의 저 분을 조금 응원하고 싶어졌을 뿐이에요.”
“아, 네! 저도 응원할거에요!”
트리니티의 두 소녀는 서로 마주 웃으며 영웅을 응원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저 괴물을 상대로 이기길 빌면서.
2.
[미친 짓이야. 그러다가 뇌가 다 타버릴 거라고.]
비전 너머로 들려오는 반대의 목소리.
원격으로 나를 서포트해주던 치히로의 말이었다.
[톰 포드 슈트의 출력 리미트를 해제하면 기본 10만 볼트, 아니 그 이상의 출력이 발산돼. 아무리 너의 신체 내구성과 재생력이 좋다고한들 단숨에 가루가 될게 분명하다고!]
톰 포드 슈트에 내장된 여러 기능 중 하나.
원하는 방향으로 뇌전을 발산시켜 적을 감전시키는 기술. 초기 구상으로는 단순 제압용으로 탑재한 기능이었지만 리미트를 해제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소 10만 볼트, 혹은 그 이상의 고압 전류의 발산.
절연제를 전신에 두르지 않는다면 공격받는 대상은 물론이고 함께 붙어있는 나조차 위험하겠지.
치히로는 그런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네요.”
이상하리만치 걱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확신만이 더욱 얹어질 뿐.
콰앙─!!
비나가 육중한 몸체를 뒤흔들며 내게로 날려오는 꼬리를 보며 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저 괴물을 잡으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일반적으로 감수할 수 없을 정도의 고압 전류가 흐를 거라고! 그런데-]
“아뇨. 이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어요. 곧 비나의 다른 패턴이 시작됩니다. 아시잖아요?”
[너, 이거 자살 시도나 다름없어. 알고 있어?]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치히로.”
[하……!]
쇄도하는 꼬리를 시야에 가득 담아내고 본능적인 판단에 따라 웹 슈터를 비나의 몸체로 발사해 꼬리의 공격을 피해낸다.
허공을 스쳐지나가는 꼬리, 그리고 이어서 내게로 돌진해 오는 비나의 거대한 아가리.
“흐읍…!”
이번에는 비나의 미간을 향해 웹 슈터를 발사.
그리고 오른팔에 강하게 힘을 불어넣으며, 당긴다.
순식간에 내 몸이 위로 상승하며 비나의 이빨을 가까스로 피해내자, 놈은 아쉽다는 듯 울음 소리를 내었다.
[Krrrrrrr……]
이내, 놈은 갑자기 인사라도 건네듯 고개를 내리며 등허리가 있는 부위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저것이 단순히 제스처가 아닌 다음 공격을 위한 패턴임을.
철컥-
강철로 이루어진 비나의 등허리가 열린다.
그리고 보인 것은 내게로 겨냥되어 있는 미사일들.
콰아아─!
한방 한방이 직격한다면 큰 폭발이 일어날 것이 분명한 공격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사일을 모두 흘려보내 시내에 떨어뜨린다면 지상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리라.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공격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 비나에게 공격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물러서면 안되는 존재였기에.
“더럽게 까다로운 패턴이구만, 진짜!”
원작처럼 엄폐물에 숨어서 총만 쏴도 처리가 가능했다면 모를까, 어째서인지 지금은 불가능해 보인다.
일반적인 총알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열압력 충격파를 직격으로 얻어맞고도 고통만 호소하던 자식이다. 단순히 총알로 이길 수는 없었다.
‘위험을 조금 감수한다면, 가능하겠는데.’
치히로가 아직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면, 그 전까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막겠다.
그것이 설령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물이라 해도 말이다.
─쿠궁.
결심한 순간, 현재 가능한 최대로 감각을 열었다.
초감각의 극한. 인간의 영역을 넘은 신비(神祕)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감각을 나의 뇌에 아로새긴다.
하여, 모든 감각이 무거워지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준동이 이어진다.
넓어지고, 늘어나고, 더욱 세밀해진다.
나의 감각은 이제 인간의 것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넘어가 주변 일대의 모든 것들을 읽어냈다.
“학, 끄흡……!”
머릿속으로 밀려오는 정보의 파도.
단순히 신경계만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나의 감각은 수많은 가능성과 아득한 변수로 이루어진 미래마저 천천히 가늠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
‘머리, 깨지겠네! 시발!’
힘겹게 숨을 토해내며 그것들을 읽고자 하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사일과 비나가 천천히- 일반적으로는 빠르다고 평가할 속도로 준비하는 다음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평소에 초감각을 전력으로 활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초감각은 인간의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이기에.
1초를 수천으로 쪼갠 찰나의 순간.
그 찰나에서 나는 1분을 읽었고, 더 나아가 1분의 너머를 읽었다.
나의 의식이 상승함을 느꼈다. 나의 시선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는 듯한 감각. 자신을 넘어 타자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 이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1초라도 버티기 어려운 감각이리라.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나의 초감각은 그런 부분까지 보조하니까.
내 감각을 인간 이외의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초감각의 본질이었으니까.
“하아, 하아…….”
아득한 두통을 느끼며 감각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내가 바라는 것을 위해 손을 뻗었다.
이내, 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사일을 향해 손을 뻗어 웹 슈터를 발사했다.
모든 것이 느릿해진 세상 속, 웹 슈터의 발사지점에서 새하얀 용액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내가 팔을 뻗은 지점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아주 천천히. 슬로우 모션과도 같이.
촤아아악….
아직까진 쉽사리 적응하기 어려운 감각이지만, 이제는 본능적으로 내가 내릴 판단을 이해했다.
웹 슈터가 발사한 거미줄이 정면으로 다가오는 미사일에 닿은 순간, 왼손의 웹 슈터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눌러 거미줄을 전방으로 발산시킨다.
하여 측면으로 다가오는 모든 미사일을 거미줄로 묶고, 그것들을 한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비나에게 거미줄을 쏘았다.
그리고-
‘이대로 녀석에게 날아가기만 하면……!’
나에게 날아오던 미사일은 내 거미줄에 의해 자신의 주인이었던 비나에게로 쇄도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몇 초만에 이루어진 행동으로 보였겠지만, 나는 달랐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체감상 느낀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후읍……!!”
나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초감각을 끊었다.
그러자 느릿하게 이어지던 감각이 현실을 되찾고 순식간에 내가 이룬 것들이 빠르게 실현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Kraaaaaaaaa──!!]
자신에게로 미사일이 되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고통에 찬 비명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는 비나.
그리고 지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는지 경악에 찬 눈빛을 보내는 시민과 학생들의 시선.
그리고.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나를 보조하던 치히로의 경악 어린 감탄.
그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답했다.
“리미터, 해제해주세요.”
[하아, 진짜! 그러다가 죄다 타버려도 난 모른다?!]
“흐흐흐. 묠니르 못 참지.”
[아오 진짜! 뭐라는 거야, 아까부터!]
삐빅-.
치히로의 불만 섞인 말들과 함께 들려온 알림음.
그리고 이내 느낄 수 있었다.
내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에너지를!
“와 시발.”
이거 잘하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짜릿 수준이 아니다. 골로 갈 수도 있겠어.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3.
쿠궁-
쿠구궁-
카가가가각─!!
그 순간.
지상에서 테러화 병사들과 싸우던 모두는 들었다.
하늘 위, 아득하기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강철 뱀이 있는 위치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음을.
또한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을 이끄는 푸르른 빛을.
번쩍-
번쩍-
마치 섬광탄이 연속으로 터져나가듯 비나와 접전을 벌이는 실크에게서 빛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온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지상의 모두는 물음표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고개를 들어올렸고, 이는 테러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비의 반전 상태인 테러화 상태인 데다, 기계였던 그들은 본디 이러한 상황에서 고개를 들어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보는 행위를 하지 않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금 이 순간은, 기계인 그들마저 고개를 들어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니까.
하늘 너머에서 관측된 막대한 에너지.
데카그라마톤의 불온하기 그지없는 단말마.
그리고, 그 중심에서 느껴지는 최우선 격살 대상의 신호까지.
쳐다볼 수밖에 없는 순간.
테러화 병사들이 일제히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고개를 들어올렸고, 보았다.
쿠구궁─!!
푸르른 번쩍임을.
아비도스를 비추는 광명(光明)의 빛을!
콰르릉─!!
이어서 들려온 것은, 그야말로 천둥 번개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울림이었다.
자연적이면서도 어딘가 인위적인 소음.
그에 지상에 있던 모두는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뭐, 뭐야?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저건… 실크? 무슨 짓을 하려는거죠?”
“실크…….”
“저게, 실크가 하고 있는 짓이라고……?”
아무리 영웅일지라도 한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이건 그냥 초능력자나 다름 없지 않나!
먼 거리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동일한 감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실크가 하고있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으니.
스파크가 번쩍인다.
고압 전류가 공간을 찢으며 마찰음을 내었다.
대충 보더라도 닿는 순간 타버릴 듯한 전류다.
그런데, 실크는 그것을 한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진짜 괴물이냐고……!”
상황을 지켜보던 이오리가 그리 경악성을 내었을 순간이었다.
────!!
다시금 실크에게서 천둥이 번쩍이더니.
이내.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천둥의 파도가 강철 뱀을 휩쓸자, 푸르른 빛이 아비도스 시내 일대를 뒤덮었다.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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