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61



1.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

이제는 ‘전생(前生)’이라 불러야 할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고자 한다.

예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도 흐릿해지지 않고 선명히 남아있는 기억들.

그 기억들을 하나로 묶어 문장으로 표현해보자면….

나의 삶에는 언제나 책임이라는 단어가 뒤따랐다.

바로 저것이리라.

어린 시절, 평범한 아이라면 부모라는 존재가 대신하여 책임을 져야했을 시기부터 나는 오롯이 내 책임을 자신이 직접 감당해야만 했다.

자는 것, 입는 것, 먹는 것에 이르기까지.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뒤따르는 책임이란, 어렸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겁고도 무서운 족쇄였다.

그렇기에 나는 책임이란 의미를 알면서, 가족과 사랑이란 의미를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의미를 알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언제나 나 자신이 단단해지고, 이를 악물며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고, 꿈이 없었으며, 안정이 없었다.

그 시기의 내가 겪었던 것은, 이곳의 선생이 표현하길 ‘아이’의 삶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러 친척이 돌아가면서 나를 부양해주었다는 것. 나름의 친화력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듯 가정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도, 그들과 나 사이에 놓여진 경계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과도 같았기에.

친척들은 나의 모든 것을 감당해주지 않았다.

사촌들은 나를 진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에겐 언제나 ‘진짜’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익힌 친화력으로 가면을 썼고, 어린 시절부터 학교 생활보다 사회 생활에 가까워졌다.

낭만보단 이득을, 낭비보단 절약을, 꿈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상이나 희망 따위를 믿지 않았기에 항상 모든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인간이 되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기에 남들과 깊은 사이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망가졌다.

나의 삶은 칙칙하고도 퍽퍽한 빵과도 같았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나 속은 거칠기 그지없는.

빵으로 여기기도 어려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고.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이것이 내가 사회라는 야생에서 살아남으며 깨달은 지식이었으며, 방법이었다고.

어쩌면 마음 속으로 빌었을지도 모른다.

내 비틀려있는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 가면을 쓰다보면 언젠가 그것이 진짜가 될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살아가며 나의 이 삶을 진짜로 여기게 될 정도로 나 자신이 밝아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현실은 언제나 가혹한 것이었고,

언제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그래서, 남들보다 공상에 더 빠져들었다.

남들보다 이상과 희망을 불신하면서도, 그것을 보여주는 히어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누구보다 책임이란 단어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의 의미를 실현하는 ‘선생’을 존경했다.

그 무엇보다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기에 몽상에 빠져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책임의 의미를 다시 배웠고, 의무와 신뢰의 의미마저 다시금 깨달았다. 어른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아이의 삶이란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난 [블루 아카이브]를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칙칙했던 내 삶에 푸른색 물감을 덧칠해주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다른 말로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후에도 당황하지 않은 것은.

더 나아가, 한없이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거짓이 현실이 되었다.

현실은 거짓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조차 변할 수 있었다.

2.

콰아앙─!!

붉은 빛이 모래사막을 내리쬐고, 거센 폭발음이 주변을 휩쓸었다. 위험을 알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끝없이 이어지는 총성과 비명이 가득 울려퍼졌다.

다른 이가 듣는다면 테러라도 벌어지는 듯한 소음이 수십분 간 이어졌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오는 진원지를 들여다보면, 그곳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폭발과 습격에 휘말리는 대상이 전부 사람이 아닌 오토마타였으니까.

그리고 습격자가 오직 한 명뿐이었으니까.

콰아아앙─!!!

다시금 터져나온 폭발과, 그 뒤를 잇는 충격파.

제트기라도 지나간 것처럼 뻗어나온 무형의 파동은 모래를 뒤엎고, 오토마타들이 거주하던 야전기지를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수백에 달하는 오토마타들, 그것도 전투 훈련이 되어있는 병사들인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저 충격파에 가장 취약했다.

시야에 잡히지도 않으면서 닿는 순간 메인프레임의 전원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기이한 기술이었기에.

병사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마냥 모래바닥에 쓰러지자, 그 사이를 한 명의 소녀가 스쳐지나갔다.

소녀는 마치 이 장소를 알고 있다는 듯이 거침없이 정면으로 나아가며 손목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왼팔에 장착된 장갑- 정확히는 소형 건틀렛에 가까운 장갑은 붉게 달아올라 새하얀 증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다만, 이전의 것보다 더욱 빠르게 온도가 낮아지는 모습이 그녀의 무기가 개량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우웅-

소녀를 뒤따르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드론 여럿.

그것들이 쓰러진 오토마타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파직-! 소리와 함께 푸르른 전기 다발이 쏘아낸다.

전기 광선에 얻어맞은 오토마타들은 단숨에 기능을 상실하며 전원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그때, 선두에 서서 걸어가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감시 카메라는?”

대뜸 말을 꺼냈기에 다른 이가 보았다면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소녀의 귓가엔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물음에 화답하였다.

[이미 해킹했답니다.]

“좋네요.”

자칭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이자, 현 시점 유일하게 전지(全知)의 학위를 부여받은 소녀, 아케보시 히마리의 목소리였다.

히마리는 소녀의 덤덤한 칭찬에 침묵하였다.

본래라면 기쁘다는 감정을 선명히 드러냈을 히마리였지만, 화면 너머의 소녀가 보이는 감정을 읽어냈기에 자신도 덤덤하게 반응해주고 있었다.

이는, 히마리와 마찬가지로 드론으로 영웅 소녀를 함께 서포트하는 베리타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내부로 진입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길 안내는 내가 할게.]

“네. 부탁할게요, 치히로.”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소녀- 나나시 히이로가, 실크가 얼마나 정의롭고, 그 신념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그렇기에 현재 실크가 얼마나 진지한 지를.

실크가 품고있는 감정이 얼마 만큼 격정적인 지를.

실크의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졌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실크는 현재 분노하고 있었다.

쿠궁-

카이저 PMC의 마크가 새겨진 벙커의 정면이 마치 주인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실크가 정면에 서자 문을 개방하였다.

정확히는 히마리의 솜씨였지만, 타인의 눈에는 실크가 오니 때맞춰 문을 연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리고 이는.

“대체, 어떻게……!”

벙커의 내부에 숨어들었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품은 감상이었다.

자신들의 병사 몇 명과 함께 구석으로 몰려있는 거대한 체구의 오토마타가 경악스런 탄성을 질렀다.

그는 마치 사람처럼, 분노라도 한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벙커를 침입한 습격자를 노려보았다.

“감히 멋대로 우리 카이저 PMC를 습격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영웅이라 할 수 있는가!”

노란빛의 안광이 빛을 발하며, 묵직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나의 행동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말이다.

그의 곁에서 서 있는 병사들이 머뭇거리며 내게 총구를 겨눠보지만 나는 알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내게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걸.

그렇기에 PMC 이사의 저 말들이 한낱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시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 너를 영웅이라 칭송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당연히 욕을 먹겠지. 나는 법을 무시하고 기업의 사유지를 침범한 것으로도 모자라 멋대로 너희들을 공격하고 협박마저 하였으니까.”

“하! 그걸 알면서도 이곳을 습격하다니! 우리 카이저 코퍼레이션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 멍청하구-”

“근데 말이다. 시민들은 모를 거다. 이번 사건은.”

“……뭐?”

신나서 떠들기 시작하려는 PMC 이사의 말을 중간에 끊어내곤 말했다.

내 태연한 태도에 당황했는지 이사는 기계이면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이사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구석에 몰려있음에도 더욱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촤악-!

내가 녀석의 몸에 거미줄을 묶어서 당기지 않았다면.

“크어억!”

순식간에 내게로 붙잡혀온 PMC 이사.

곁에 있던 병사들이 다급하게 대응하려고 했으나 내 곁에서 부유하던 드론들이 놈들을 제압했다.

나는 이사를 바닥에 쳐박곤 목을 붙잡았다.

“착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너희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니까.”

“뭐, 뭐라고……?”

이사의 목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끄드득- 하며 금속이 휘는 소음이 울려퍼졌다.

“프레지던트에게 연락해라.”

“끄으윽! 그,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크아아악! 아, 알겠다! 알겠으니까 손을 놔라!”

그제서야 해방된 PMC 이사는 삐걱거리면서 책상으로 다가가 어딘가에 연락을 하려고 하더니-

타앙!

순간 품 안에서 총을 꺼내들어 내게 발사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걸 감지하고 있던 나였기에 고개만 틀어서 총알을 피해냈다.

“개수작을 부리는군.”

나는 단숨에 이사에게 날아들며 주먹을 꽂았다.

그것도 왼팔의 미니 건틀릿으로.

콰아아앙!!

충격파까지 발산되진 않았지만 가속력을 실어서 놈의 복부를 타격한 건틀렛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크으아아악……!!”

내부의 장치들을 단숨에 진탕으로 만들기 충분한 공격에 이사는 고통에 찬 비명을 흘렸다.

과연 오토마타가 고통을 느낄지는 알 수 없으나, 내부 장치들이 망가지는 것에는 충격을 받긴 하겠지.

나는 이사를 내려놓으며, 더욱 선명한 목소리로 녀석에게 명령했다.

“프레지던트에게 연락해.”

“…….”

이사는 그 어떤 말조차 꺼내지 않고 순순히 통신 장치를 조작하더니 어딘가로 연락을 걸었다.

그렇게 몇십초 간 이어지던 연락음이 이내 끊기고,

[무슨 일이지, 이사?]

프레지던트로 추측되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 한줄기 빛이라도 봤다고 판단했는지 이사가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으나-

콰앙!

나는 주먹으로 놈의 전원을 꺼뜨렸다.

[방금 그 소음은 뭐지?]

“그쪽이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프레지던트인가?”

[……실크. 네 녀석이 어째서 그곳에.]

화면에 내 모습을 드러내자, 홀로그램 너머의 프레지던트는 꽤나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PMC의 이사를 붙잡아 책상 위에 머리를 얹었다.

그러자 입을 벌리던 프레지던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분노라도 한 모양이었다.

“경고를 하기 위해서 왔다.”

[경고라. 하하, 키보토스의 영웅께선 전부터 우리 카이저에 관심이 참 많으신 모양이군. 이렇게 제멋대로 굴어놓고 우리가 너의 경고를 들을거라 생각하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들어야지. 안 들으면 너희 기업은 도시에서 사라질 텐데.”

[하. 그것 참 무서운 소리로군.]

여전히 여유로운 반응을 보이며 내게 비아냥거리는 프레지던트.

놈의 여섯 개 눈동자가 살벌히 빛나며 내게 엄청난 적의를 쏟아내고 있는게 보였다.

그에 나 또한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눈 좆같이도 뜨네. 확 파버릴라.

“어디 네놈들이 생각한 기업도시보다 무서울까. 그리고 눈 똑바로 떠라. 다 깨버리기 전에.”

[뭐? 네놈, 지금 뭐라고─!!]

“눈 똑바로 뜨라고, 이 새끼야.”

[그전에 말이다!]

하. 그걸 알 거라곤 생각 못했나 보지?

“기업도시. 키보토스 장악. 이게 너희들의 목표잖아? 아비도스는 그 일환 중 하나인 거고.”

[………….]

경악하는 프레지던트.

기계인 탓에 눈빛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지만, 아마 녀석의 반응을 보아 당황했음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원래는 너희들이 아비도스를 점거하지 못하도록 막기만 할려고 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내가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도 멈추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쳐들어왔다.

호시노가 잘못된 선택을 내리더라도 판을 부숴버림으로 그녀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더 나아가, 카이저에게 제대로 경고하기 위해서.

“너희들이 나를 적대하는 건 상관이 없어. 애초에 친해지고 싶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결국 선을 넘는다면 난 너희들을 전부 박살내서 지하로 쳐박아버릴 거다. 그러니 잘 선택하도록 해.”

[……무엇을 말이냐.]

“아비도스에서 철수할지, 아니면 끝까지 갈지.”

나는 프레지던트에게 경고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어른의 방식으로 말이다.

너희들이 자신의 이점으로 남들을 압박한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내 이점으로 너희들을 압박하겠다.

‘만약 여기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가 꾸미고 있는 일들의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3.

책임. 참 무거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선생은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오래전부터 책임이란 단어의 무게를 알고 있던 나였기에 그가 꺼낸 그 문장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이상 지체하지 않고 나서기로 했다.

아비도스의 상황을 곧바로 정리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그래서 카이저를 찾아갔고, 녀석들을 협박해 아비도스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었다.

이제 아비도스의 상황을 정리하기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아비도스의 일상이 되돌아올 것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

나의 감각은 여전히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마치,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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