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60



1.

콰앙-!

격정적으로 책상을 내려치는 소음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리카의 돌발 행동에 지적하지 않고, 그저 심각한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진짜야?”

침묵을 깨고, 세리카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회의실 책상에 놓인 자료에 향해있었다.

우리가 암흑 은행을 털어서 가져온 자료에는 꽤나, 아니 대책위원회의 입장에선 심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단순히 카이저론이 불량학생들을 고용했던 흔적부터 시작해 아비도스 자치구의 토지 대부분이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소유라는 사실까지.

사실 자신들의 적이 카이저 코퍼레이션이라는 대기업이라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진 순간이었다.

그들은 대책위원회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영역에서 천천히 아비도스를 삼켜나가고 있었다.

길고 긴 세월을 거쳐가면서 아주 천천히 말이다.

“…….”

그 교활함과 치밀함에 우리와 함께하던 선생마저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대체 카이저 코퍼레이션은 뭘 노리고 있는거야…?”

“아비도스의 토지를 천천히 사들이면서, 아비도스 고등학교를 압박한다. 돈으로 자치구라도 삼킬 생각인가 보네요. 이 자식들.”

떨려오는 세리카의 목소리에 나는 덤덤히 답했다.

그에 분노하는 표정을 짓는 세리카였지만, 그보다 더 아득하기만 두려움이 그 위로 새겨져있었다.

노노미와 시로코, 히후미 또한 반응을 보였다.

“이해할 수 없어요!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행동을? 단순히 대금을 받는 걸로도 부족했다는 말인가요?”

“이건 일개 은행의 작당이라곤 볼 수 없어. 분명히 본사의 의지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밖에…….”

“……네. 그게 논리적인 추론이에요.”

아득하다. 그리고 허탈하다.

이 순간 아비도스 대책위원회를 사로잡는 감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들이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모두의 심지를 꺾었다.

하나같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앞에 놓인 자료를 쳐다보는 모습들.

차라리 이 내용이 거짓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흐음…….”

다만, 대책위원회에서 오직 한 명만이 반응을 달리했다.

다른 아이들이 아득하거나, 분노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면 오직 오드아이를 지닌 한 소녀만이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이 방법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 고민하듯이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부디, 그녀가 옳은 선택을 내리길 빌며.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그 날 오후, 히후미는 예정대로 자신의 모교인 트리니티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모두에게 전달하였다.

우리는 다같이 히후미를 배웅했다. 그 과정에서 히후미가 알게 된 사실을 트리니티의 학생회인 ‘티파티’에 보고해 아비도스를 돕겠다며 선언하기도 했으나…….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호시노는 그것을 거절했다.

이유는 뭐, 원작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트리티니나 게헨나와 같이 거대한 학원의 개입은 오히려 아비도스에 더욱 큰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 현 시점의 아비도스는 거대한 학원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조차 없다는 이유.

그것들을 전해들은 히후미는 쓰게 웃으며 아쉽다는 기색을 내비칠 뿐이었다.

“……어렵네요, 정치라는건.”

“호시노 선배,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거 아닌가요? 진짜로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히이로처럼.”

“…….”

호시노의 비관적인 판단에 노노미가 우려를 표했다.

나라는 선례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역시나 다를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본래 호시노라면 이 대목에서 ‘자신은 이미 남의 호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대답했겠지만, 나라는 존재가 나타난 탓에 입을 다무는 모습.

결국 이 부분은 내가 나서서 정정해주기로 하였다.

나도 타 학원의 개입은 바라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무엇보다, 조만간 일어날 일도 있으니.

“그 부분은 저도 호시노 선배의 의견에 동의해요. 저야 원하는 바가 있었기도 했고, 여러분들이랑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겠죠. 개인과 집단의 판단 가치는 다르니까요.”

“으헤~ 역시 히이로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구만.”

“그런가요…. 아쉽게 됐네요…….”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별하게 되었다.

“아하하…. 다음에 또 뵈어요, 여러분.”

“이야, 파우스트 님. 신세를 졌네.”

“수영복 복면단 단장님! 다음에 또 봐요!”

“그,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2.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대표하는 명언 중 하나로, 이미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난 뒤의 상황을 두고 표현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지금의 상황은 저 말과 일맥상통했다.

나는 이미 수많은 떡밥을 통해 주사위를 굴렸으며, 이제 내가 바라는 일이 성사되길 비는 수밖에.

정확히는 다른 이들이 옳은 주사위를 굴리길 빌었다.

“분기점, 인가.”

내가 메인스토리를 되짚으며 계획을 작성할 때 고려했던 중요 포인트를 ‘분기점’이라 표현하였다.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선택이 요구되는 지점.

내가, 그리고 누군가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 시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호시노가 검은 양복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게헨나 선도부가 아비도스로 쳐들어오느냐.

그리고-

카이저 코퍼레이션이 내 개입이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야망을 꺾지 않고 실행하느냐.

수많은 선택이 교차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 순간까지 오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름 만족스럽게 상황을 이끌어오기도 했으며, 어느 순간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 또한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도 지금만은 못했다.

이 지점에서 내리는 선택은, 앞으로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기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리는 선택이기에 고민했다.

무엇이 가장 최적의 선택일지를 말이다.

“선생님, 잠시 시간 되십니까?”

“응? 히이로?”

가끔은, 누군가의 조언을 듣는게 좋을지도 모르지.

내가 인정하는 어른이자, 내게 지혜로운 해답을 내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도시의 유일한 존재에게.

그에게 나의 고충을 잠시 이야기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이 있고, 여러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가장 최적의 선택을 내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다소 대뜸없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말이다.

“히이로는 실크를 좋아하니?”

“……예?”

“다른 뜻은 아니고, 히이로가 전부터 실크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어, 음. 관심이 있기는 하죠. 갑자기 왜요?”

내가 실크니까, 나 자신에게 관심은 가져야지.

속으로 생각하며 어색하게 답했다.

“실크는 정의롭지. 항상 올곧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고. 나 또한 가끔씩 실크를 보며 배울 때가 있단다.”

“선생님이요……?”

“응. 존경할만한 사람이잖니?”

“…….”

이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데.

나는 잠시 당황하면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인정하는 키보토스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어른이, 선생이 나를 인정한다.

그 사실이 어째서인지 가슴이 뛰도록 만들었기에.

“때로 선택하기 어렵다면, 너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 대입해서 선택을 내려봐도 좋을거야. 내가 아닌 누군가라면 어떻게 선택했을까- 하면서.”

“…….”

“내가 보았을 때, 히이로 너는 심지가 올곧은 학생이야. 네가 바라는 선택을 내리는게 최선이겠지만, 그게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빌려도 돼.”

“……그렇, 습니까?”

내 물음에 선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이번엔 선생이 내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히이로, 대책위원회를 도울 생각이야?”

내가 내리게 될 선택에 대해 짐작한 말투.

어쩌면 선생은 내가 실크라는 사실도 알아챘을까?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그저…….

“예. 친구들이니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익숙한 대사였다. 왜 다른 학생들이 선생을 그토록 믿고 신뢰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난 미소 지으며 선생에게 대답했다.

“흐. 그거 꽤나 듣기 좋은 말이네요.”

“그런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졌네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이제 나 또한 선택을 내릴 시간이었다.

3.

달칵-

늦은 시각, 고요한 어둠이 내리앉은 새벽.

아비도스에 몇 없는 고층 건물 위에서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아비도스를 내려다보는 소녀가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영웅이라 불리며, 이제는 도시의 희망이자 정의의 상징이라고도 표현 받는 소녀.

빙의를 당해 타인의 몸에서 깨어나는 신비를 겪고, 수많은 적들을 꺾으며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지식을 품고, 원대한 꿈과 목표를 위해 일어선 아름답고도 정의로운 소녀.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실크’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히이로. 준비가 끝났어요.]

그녀를 ‘나나시 히이로’라 불렀다.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의 신호를 받은 영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푸르른 가면으로 세상을 담았다.

익숙한, 과거에는 화면 너머로만 보았던 풍경이다.

2D 그래픽으로만 보았던 장면들, 그저 팬심으로 보면서 즐거워했던 순간들, 직접 닿지는 못했던 장소들.

이제는 내가 닿을 수 있고,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해버린 공간들이었다.

“히마리 선배.”

[네.]

“영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영웅, 인가요?]

다소 뜬금없는 물음이었는지 당황한 듯한 히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히마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애시당초,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이 아니었기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웃지 못할 때 웃는 존재.”

[…….]

“남들보다 옳은 선택을 내리는 존재.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영웅입니다.”

과거와는 다른, 꽤 시간이 지났기에 내릴 수 있는 영웅의 정의(定義)였다.

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전처럼 내가 내리게 될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믿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막는다.

누구보다 앞서 나가서 이겨낸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무한대의 믿음을 보내듯이,

나 또한 ‘실크’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

그리고 그 판단 하에.

나는 이 순간이 움직여야 할 순간임을 알았다.

그리 판단했고, 동시에 선택했다.

“시작해봅시다.”

영웅으로써, 도시를 구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자.

나는 히마리에게 그리 선언하고 있었다.

우웅-

내 왼손에 장착된 장갑이 빛을 발했다.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드론이 소음을 내었고.

푸르른 안광을 토해낸 가면이 정보를 읽어냈다.

[후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 말만 해주라고!]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게, 실크.]

귓가로는 믿음직한 동료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의 등을 떠밀어주는 모든 것들을 업은 채로, 나는 건물 난간에 발을 떠밀었다.

“후우.”

옅은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곤 잠시 눈을 감으며, 감각을 열었다.

찰나의 순간, 무수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들어차며 나의 판단을 도왔다.

가늠하고, 감지하고, 더 나아가 인지한다.

적들은 움직임을 개시했고,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원작의 내용을 한없이 비틀어버리는 것이었다.

실크로서, 그리고 히이로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해서.

‘너희의 선택에 답해주마.’

이것이, 내가 내린 선택이었고,

빙의자인 나만이 가능한 싸움 방법이었기에.

나는 적들의 미래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미래를 나의 과거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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