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59



1.

이기지 못하면 합류하라.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면 차라리 이기는 쪽에 배팅하라는 스포츠계의 명언이었다.

혹자는 이기는 쪽에 들러붙는 건 기회주의자나 할 법한 발상이 아니냐고 혹평을 하기도 하나, 나는 나름대로 납득할 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말이다.

나는 아비도스 아이들의 굳은 결심을 꺾지 못했고, 결국 그녀들과 함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무엇이냐면.

“모두 엎드려! 들고 있는 무기를 다 바닥에 내려놔!”

“말 안듣는 사람은 혼나는 거에요☆”

“아, 아하하…. 여러분, 다치면 안 되니… 엎드려주세요…….”

은행 강도 짓을 말이다.

하하하. 시발.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2.

쿵-!

암흑 은행의 전등이 꺼지며 순식간에 찾아온 암전.

은행에서 각자 업무를 하던 직원과 손님 구분없이 갑작스레 덮쳐온 이변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뭐, 뭐야!”

“정전?! 왜 갑자기-”

투다다다다-!

이어서 혼란으로 가득찬 장내에 울려퍼지는 총성.

누구라도 습격, 혹은 테러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한 과격한 울림이 은행을 가득 채웠다.

“크아아아!”

“으아아아악!”

다급하게 적에게 대응하려던 마켓 가드의 비명 소리가 이어진다. 습격자에게 당했는지 풀썩- 하면서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진다.

은행 내부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고,

사람들은 총알이 자신에게 튀지 않기를 바라며 자세를 최대한 낮게 낮추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내, 머지않아 은행의 전등에 불이 들어오고 은행을 공격한 습격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하얀색.

그리고…… 빵봉투?

불운하게도 같은 시각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하던 한 악마 소녀는 그 광경을 어벙벙하게 지켜보았다.

보다 정확히는, 자신이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실현하는 자들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지……?!’

진정한 무법자를 꿈꾸는 한 악마 소녀의 눈빛에는 ‘동경’이라 부를만한 것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 소녀가 한 영웅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간직해오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감정.

이를테면,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룬 선배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멋지잖아……!”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어째서인지 아루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이가 한명 존재했으니.

“하아, 이게 뭔 일인지.”

말로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권총 한 자루만으로 다가오는 모든 마켓 가드를 정리한 소녀.

숫자 5가 적힌 하얀색 복면을 쓴, 무법자가 보이는 노련하고도 익숙하다는 듯이 적을 처리하는 모습. 그 광경이야말로 자신이 닮고 싶은 것이었기에.

거기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법자들이 보이는 모습마저도 아루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어이, 거기!! 엎드리라고! 허튼 짓하면 주, 죽인다?!”

“여러분 제발 가만히 계셔주세요……. 아우우…….”

“으헤~ 계획대로 되고있어! 이제 다음 스탭으로 가자고! 리더 파우스트 씨, 지휘를!”

“네? 네?! 저, 저요? 리더요? 제가요?!”

대뜸 리더라 불리게 된 히후미는 당황해하며 대책위원회 멤버를 쳐다봤지만, 그녀들은 하나같이 대동단결하며 히후미를 리더로 선출했다.

“두목이에요! 보스에요! 참고로 저는… 수영복 복면단의 크리스티나~ 다롱♧”

“뭐야, 그게! 우리 언제 복면단이 된거야?!”

“으헤, 이 파우스트 씨는 엄청 무섭다고. 말 안 들으면 혼단다고.”

“아우우…….”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수영복 복면단(수영복 아님)의 리더가 된 파우스트.

그녀는 당황하며 티파티 분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아우우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러한 히후미의 심정을 이해하는 또 한명의 소녀가 있었으니.

‘아. 히마리 선배한테 뭐라고 설명하냐.’

히마리랑 베리타스가 투명 드론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과연 뭐라고 설명을 해야 납득할까.

잘 모르겠다.

음. 의외로 재밌었다면서 넘어갈거 같기도 하고.

탕-!

히이로는 저 멀리서 천천히 정신을 차리려는 마켓 가드에게 또 한발의 총알을 발사하며 고민했다.

갑자기 서로의 닉네임을 정하더니 자신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는 대책위원회를 보며 나도 중얼거렸다.

어차피 또 안쓸테니 대충 짓자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걍 대충 베놈으로 하지, 뭐.”

“베놈! 엄청 멋있잖아……!”

“음?”

갑자기 곁에서 들려오는 감탄의 목소리.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주 익숙한 얼굴의 악마 소녀가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아루?”

“어?”

아 시발.

괜히 아는 척했다.

3.

우리는, 정확히는 수영복 복면단은 암흑 은행에서 필요했던 서류들을 챙기고 도망쳤다.

예상했던 대로 뒤따라 쫓아오는 블랙 마켓의 가드들이었지만 블랙 마켓에서 수없이 히어로 활동을 해온데다 초감각까지 지닌 나를 쫓아올 순 없었다.

정확히는,

이길 수 없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콰아아앙─!!

“먼저 가세요. 나중에 따라가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위험하잖아!”

“괜찮습니다. 이미 몇 번이고 상대해 본 녀석들이라.”

“대체 뭔 말이야?!”

아니, 세리카. 진짜 괜찮다니까.

이럴 때는 정체를 감추고있는게 불편하단 말이지.

내가 호시노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세리카를 데리곤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는 모습.

나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많이도 오셨네.”

순식간에 나를 둘러싸는 무수한 블랙마켓 가드들.

나 혼자만 남아있는 모습에 순순히 항복하라고 말하는 녀석들이었지만,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권총을 붙들곤 녀석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항복이라, 웃긴 소리였다.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말이다.

“내 총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리지.”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름대로 폼을 잡아가며 중얼거리자 내가 심상치 않은 녀석으로 보였는지 주춤거리며 당황해하는 블랙마켓 가드들.

나는 녀석들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 숫자 5 보이냐?”

내 물음에 적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살벌하게 미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정면으로 팔을 뻗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면서.

“5분.”

딱 그 정도면 너희를 정리할 수 있겠다.

나는 그리 선언하며 블랙마켓 가드에게 달려들었다.

“후우! 뒤지게 힘드네요!”

“히이로! 돌아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그럼요. 저런 녀석들에겐 안집니다.”

“……방금 저희를 쫓던 사람들은 블랙 마켓의 치안 기관 중 최상위 조직 소속이었는데.”

히후미의 태클을 무시한 채, 나는 일행이 모여있다는 도심의 어느 골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가 챙겨온 것들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번 활동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기에.

원작대로 목표하던 카이저론의 운송 기록과 더불어 암흑 은행의 자금 유통 과정이 적힌 자료까지.

우리가 챙겨온 것들은 카이저는 물론이고, 어쩌면 암흑 은행마저 타격할 수도 있는 수준의 자료들이었다.

거기다, 원작 그대로 가방 속에 담겨있는 돈 다발.

“이 돈은 어떻게 처리하지?”

시로코가 화두를 꺼내자 원작처럼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이어진다. 나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호시노가 알아서 정리를 해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우리 히이로 후배는 어떻게 생각하려나?”

갑자기 호시노가 내게 바톤을 넘겼다.

아니,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나한테 왜 물어보냐고.

내가 눈빛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호시노는 여유롭게 그 시선을 넘기더니 베시시 웃었다.

허 참, 뻔뻔하기도 해라. 연기 하나는 수준 급이다.

“……이미 마음 속으로 결정하신거 아닙니까?”

“으헤- 그래도 같은 수영복 복면단의 일원인데 의견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하아. 그래요. 뭐, 저라면 안쓸거 같네요.”

“이유가 있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답했다.

“저희가 이 돈을 가져버리면 진짜 범죄자가 되버리니까요. 그럼 언젠가 실크가 저희들을 붙잡으러 찾아올 수도 있을거 같아서 무섭습니다.”

“시, 실크? 실크는 나쁜 녀석들만 잡는거 아니야?”

세리카가 놀란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내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호시노는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며.

덤덤하게 말이다.

“저희는 지금 은행 강도잖습니까. 의도가 어떻든 저희는 은행을 공격했고, 돈을 가져왔습니다.”

“…….”

“저희가 돈을 가져간다면 그때는 진짜로 나쁜 암흑 은행을 벌하는 수영복 복면단이 아닌, 돈을 갈취하기 위해 은행을 습격한 수영복 복면단이 되겠죠.”

원래 시민들은 그 사람의 의도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가치란 그 사람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였으니까.

그리고 이는, 영웅에게도 부합하는 진리였다.

우주의 생명 절반을 날려버린 빌런은 우주의 균형을 지키고자 구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다.

분명 그 의도와 신념은 숭고한 것이었지만, 그가 한 행동은 결코 ‘선’이리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의도가 어떻든, 그 결과가 나쁘다면.

사람들은 그 존재를 선이 아닌, 악으로 규정한다.

그저 그런 이야기다.

지금 내 의견은 아비도스 아이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질책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의견에 불과했으니까.

“뭐, 그냥 하나의 의견으로만 들어주세요. 애초에 제가 없었더라도 여러분들은 모두 지혜롭게 결론을 지었을 테니 굳이 제 의견을 묻지 않으셔도 돼요.”

이건 사실이었다.

내 의견을 따로 전하지 않더라도 그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답변을 내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을 믿고 맡겼던 것이지, 마냥 귀찮아서 대답을 미룬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호시노가 내게 대답을 물어볼 줄은 몰랐지만.

물론, 그렇다고 돈을 빚을 갚는데 쓰자는 의견을 낸 아이들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또 아니었다.

“무언가에 쫓기면 원래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죠. 돈이 그래서 무서운 거에요.”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이자, 내 말을 경청하던 일행들도 나름의 결론을 지었다.

“정말로. 쓸데없는 부분에서 고지식하다니까!”

툴툴거리는 세리카였지만 딱히 의견에 극구반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아쉽다는 느낌에 가까웠지.

“음, 그래도.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해.”

“저는 아비도스의 사정을 잘은 모르지만… 이 돈을 가져갔다간 다른 트러블에 휘말릴 수도 있을 거에요.”

“어쩔 수 없죠, 그럼. 이 가방은 제가 적당히 버리도록 할게요.”

“이야, 부탁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이야기의 흐름이 돈을 쓰지 않는다로 기울자 호시노가 그제서야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

아니 이럴 거면 나한테 왜 물어본거냐고, 이 아저씨야.

내가 다시금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호시노를 노려보려고 할 즈음이었다.

[……! 어, 잠시만요! 누군가가 그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 블랙마켓의 추적인가!”

아야네의 무전에 일행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한다.

추적을 떨쳐내지 못했다면 전투가 이어지리라는 판단에 본능적으로 몸을 위축시킨 것이었다.

물론, 일찍이 초감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가만히 있었지만.

“하아, 하아…. 자, 잠깐 기다려!”

“……누구?”

갑자기 나타난 붉은 머리칼의 악마 소녀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행들이었지만, 자신의 정체를 들킬 수는 없었기에 황급히 복면을 뒤집어썼다.

순식간에 아비도스 대책위원회에서 수영복 복면단으로 변신한 상황, 다행히도 다가온 악마 소녀는 숨을 내쉬느라 자신들의 변신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

물론, 그녀의 뒤에 있던 일행들은 다르겠지만.

“지, 진정해. 나는 너희의 적이 아니니까…….”

“넌 누군데 우리를 쫓아온거야?”

“나? 나는… 리쿠하치마 아루. 흥신소 68이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흥신소 68’?”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로코와 일행들이었지만, 아루는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다가와 즐거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은행 터는 거 잘 봤어. …블랙 마켓의 은행을 5분 만에 털고 유유히 탈출이라니. 이 시대에 흔치 않은 무법자들이잖아, 당신들?”

“……응?”

“솔직히 엄청 인상적이었다고 할까, 이 시대에 저런 과감함이 존재하다니……. 감동적이랄까?”

“어, 으음. 고, 고마워?”

“나, 나도 힘내겠어! 법칙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나도 그런 무법자가 될 거니까!”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녀석은……?”

아루의 뜬금없는 감탄사 연발에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행들이었다.

원작에서는 일면식이 있는 사람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다면, 지금은 일면식도 없는 게헨나 학생이 찾아와서 칭찬하는 것에서 오는 당황이리라.

멀리서 보니 코미디가 따로 없어서 미소를 머금으며 감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 그러니까… 이, 이름을 알려줘!!”

“…음?”

“본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너희의 세력이나 동아리?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너를 보면서 받았던 감동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을 테니까!”

“저, 저요……?”

“응! 너, 베놈이라는 이름이지? 기억하고 있다고!”

뜬금없이 나에게 다가온 아루가 말해왔다.

은행에서 보았던 내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아니, 시발.’

빌런으로 감명받지 말라고. 나 히어로라고.

거부하기 힘들게 초롱초롱 빛나는 아루의 금빛 눈동자를 보니, 절로 표정이 팍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욕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수영복 복면단입니다. 하하.”

“네, 네이밍 센스 쩔어…! 완전 쿨해! 짱이야!!”

“하하. 감, 사합니다…….”

“푸흡! 으헤헿!”

뒤에서 호시노가 빵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망할.’

언젠가는 내가 저 아저씨 울게 만들거야. 진짜로.

새로운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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