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
1.
‘모래로 방천한다’는 속담이 있다.
열심히 노력은 하나 보람이 없고, 의미마저 없는 일을 한다는 뜻의 속담. 다른 말로는 삽질을 하고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예로부터 범죄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했다.
드넓은 도시 속 수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모습을 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내비친다.
이 모든 이들을 통제하고 주시할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범죄를 막고, 악을 처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허황된 목적이자 꿈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 측면에선 히어로 활동을 두고 법을 무시하고 행하는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칭하였다.
또 어떤 측면에선 이득 없이 사서 고생하는 행위라며 히어로 활동을 정의 내리기도 하였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웅에게 부여되는 ‘가치’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결코 똑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영웅이 되고 싶다면, ‘합리’를 버려야만 한다고.
“신념과 이상을 쫓는 자. 영웅이란 그런 법이니까.”
이성적으로, 그리고 통념적으로 ‘일반적’이라 평가할 수 없는 존재만이 영웅의 길을 택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합리와 객관적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쫓아가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피해를 입든, 어떤 시련을 겪든 신경쓰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쟁취한다.
“하지만 너희는 나와 다르지.”
세력, 집단, 그리고 기업.
하나같이 이성적으로, 가치 창출과 이득을 목적으로 세워진 장소인 만큼 합리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직 자신들 기준의 합리를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 하에 이득을 얻기 위한 행동을 한다.
기업이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놈들이었기에.
때문에, 카이저 코퍼레이션은 아비도스 자치구를 제 손에 넣기를 갈망했다.
때문에, 세인트 네프티스는 자신의 사업을 진행시키다 아비도스의 몰락을 앞당겼다.
기업은 헛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오직 이득만을 쫓아 확장을 목적해야만 한다.
이는 모든 기업의 보편적인 원칙이자, 이치였다.
그렇다면─.
“그걸 부숴버리면 그만이잖아?”
저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가치를 상실시킨다.
더 나아가 놈들의 자원을 끊임없이 소모시킨다.
이것이 내가 세운 계획이었다.
이것은 치킨게임.
누구 한명이 물러서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나와 카이저의 대립이었으니.
“너희는 어디까지 패를 사용할 수 있지?”
이것은 내가 기업들에게 보내는 도발.
난 너희를 막아내기 위해서 모든걸 배팅할 것이다.
너희는 과연 나 하나를 막겠다고 기업의 기둥까지 뽑아가면서 배팅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런 선택을 내리고도 감당할 수 있는가.
덤빌 거면 와라. 허나 만약에 나를 적대하고자 한다면, 너희의 모든 걸 잃을 각오로 덤벼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카이저를 비롯한 기업에게 남기는 메시지였다.
2.
내가 지금껏 해온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들은 모두 기존 이야기를 비트는 일이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과대해석을 하자면 그야말로 ‘운명’을 비틀어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
하면, 나는 왜 이야기를 바꾸고자 하는가?
간단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블루 아카이브]의 스토리를 감상하며 느꼈던 답답함.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을 끝내고 싶다는 나의 의지.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기에, 바꾼다.
내가 바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그것이 내가 메인 스토리에 개입한 이유라 하였으나, 동시에 또 다른 생각도 들기 마련이었다.
일종의 팬심이라고나 할까, 혹은 아쉬움?
내가 스토리를 지켜보며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면, 반대로 마음에 드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애시당초 내가 [블루 아카이브]를 좋아했던 이유는 대체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 때문 아니었던가.
하여, 공존하기 힘든 두 마음이 부딪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꾸고 싶다는 답답함, 기존에 내가 즐겁게 보았던 부분을 유지하고 싶다는 아쉬움.
결론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 행동 양식을 결정하기엔 충분했다.
결국, 이야기의 변화란 내가 개입하여 생기는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필요한 부분만 개입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결정이었고.
나는 비로소 보고 싶었던 장면을 눈에 담았다.
바로─.
“은행을 털자.”
회색머리의 늑대귀 소녀가 선언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들이 블랙마켓으로 향하여 복면을 뒤집어쓰기에 이르는 모습을 말이다.
“푸흡-!”
그 모든걸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장면을 눈앞에서 직관하게 되다니.
기대했던 만큼 즐거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 어지럽네요. 흐흐.”
눈가에 눈물마저 맺힌 채 웃음을 흘리자 대책위원회 멤버들 또한 자신들의 꼴이 우스운지 함께 웃었다.
단 한명의 소녀만을 제외하고.
“무슨 소리야, 히이로. 너도 함께 해야지.”
“?”
……이건 내 예상이랑 다른데?
“자. 미리 준비해놓은 복면이야.”
“예? 저, 저도 하라고요?”
“응. 빨리.”
“…….”
아니, 지금 나보고 은행털이를 하라고?
제가요?
…저 실크인데요?
…
…
…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우리가 어떻게 블랙마켓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자.
내가 만들어낸 변수 중 하나. 아비도스를 괴롭히던 불량학생들의 부재.
이 변수 하나만으로도 뒤바뀐 일들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세리카가 불량 학생들에게 납치당하지 않게 되었고,
대책위원회가 게임에서 그렇듯 매번 전투를 치르는 나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대책위원회가 카이저 코퍼레이션을 뒤쫓게 되는 원인이 사라지게 되었다.
대책위원회 스토리의 본디 방향성은 대책위원회가 자신들을 괴롭히던 불량학생들의 무기 정보를 수집하여 유입처가 ‘블랙마켓’임을 알아채는 것으로 카이저와 대책위원회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다만, 현 상황에선 내가 카이저의 어그로를 모두 끌어버린 탓에 대책위원회가 카이저를 쫓는다는 기존의 방향성에서 벗어난 상황.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내가 자체적으로 정보를 풀면 그만이었다.
“전에 저희들을 공격하던 불량학생들이 사실은 카이저의 사주를 받았었다고요?”
“네? 저희가 갚았던 대금이 불법적인 일에 쓰이고 있다고요?”
“저희에게 대금을 받아내야 할 카이저가 대체 왜…?”
대책위원회의 회의 시간에 내가 풀어낸 정보가 충격적이었는지 아비도스의 아이들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진상을 알아채고 있었을 호시노와 표정 변화가 그나마 적은 시로코만이 큰 변화가 없었다.
나는 무릎 위에 앉아있는 시로코의 늑대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만, 카이저의 목적은 단순히 여러분들에게 대금을 받아내기 위함이 아닌거 같았습니다.”
“다른, 목적이라니…….”
너희는 아직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한 뉘앙스를 담아 그녀들에게 설명했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정보를 풀진 않았다.
모든 정보를 풀어낸다면 괜한 혼란이 생길테니,
현 시점에서 내가 수집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 딱 그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했기에.
“우선 감사해요, 히이로. 저희를 위해서 이런 정보까지 가져다주셔서.”
“친구를 위해서니까요. 헤헤.”
“히이로, 멈추지마. 빨리 더 해줘.”
“아, 넵.”
회의를 주도하던 아야네가 잠시 상황을 정리하며 내게 감사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곤, 이어서 시로코의 턱을 긁어주었다.
고롱고롱-
이게 고양이야, 늑대야.
내가 시로코의 귀와 턱을 마구마구 쓰다듬던 그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깊게 고민하던 아야네는 이 자리에서 유일한 어른인 선생에게 의견을 여쭈어보았다.
가만히 회의를 듣고있던 선생은 그때가 돼서야 입을 열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할 순 없겠지만, 히이로의 정보는 충분히 믿을만하다고 생각해. 물론, 진위여부는 확인해 봐야 하는 일이겠지만.”
그것으로 대책위원회의 다음 활동이 결정됐다.
내가 이야기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블랙마켓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블랙마켓로 향하게 된 이유였다.
3.
“아, 우아……? 우아아……?”
우리가 블랙마켓에서 새로 사귀게 된 인연.
트리니티 학원 소속 2학년인 ‘아지타니 히후미’가 당황스런 소리를 내며 페로로 가방을 꼭 껴안았다.
자칭 ‘평범한 학생’이라는 베이지색 머리칼 소녀가 당황하며 아우우… 소리를 내는건 꽤나 신기한 광경임인 분명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귀엽다며 웃거나 히후미를 격려해 주었겠지만…….
“……미친.”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면 지금 남말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대체 왜 나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냐고!
“호시노 선배, 이거 맞아요?”
“으헤~ 아저씨는 아무것도 몰라~”
모르면 알아 오라고! 이건 좀 아니잖아, 이 양반아!
“저기요. 제발 저 사람들 좀 말려줘요.”
“저번에 약속했잖아. 히이로 쨩은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하는 걸로. 약속을 어길 생각이야~?”
“아니 씹……!”
그거랑 이거랑 얘기가 다르지, 이 년아!
“아 제발.”
“아아아아. 난 모르겠는걸~”
내 정체를 알고있을 유일한 사람, 호시노는 내 애원을 못들은 척하며 멀리 떨어졌다.
“…시발.”
나는 손에 들려있는 하얀색 복면을 내려보았다.
이마 위치에 적혀있는 5라는 숫자, 본래 내 것이 아니었을 숫자가 그곳에 적혀있었다.
뗠려오는 눈동자로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책위원회 아이들에게 빵 봉투를 넘겨받는 히후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숫자를 보았다.
“…….”
6. 그곳에 적힌 숫자는 5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내가 히후미의 자리를 뺏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들 무렵이었다.
“아우우…. 학생회 분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상관없잖아! 나쁜 건 저쪽이라고!”
“출발이에요☆”
“자, 히이로. 어서 준비해.”
“…….”
시발. 나 빼고 벌써 준비가 끝났구나.
나는 세상이 꺼지듯이 한숨을 내뱉곤 그들의 바람대로 복면을 머리에 써주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선생님. 그 대사를 부탁해.”
내가 속으로 한탄을 하고 있을 때, 시로코가 옆에서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는 선생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은행을 털자!”
선생의 선언이 울려퍼졌다.
나는 선생이 내뱉는 선언을 들으며 생각했다.
‘역시 저 인간이 제일 비정상이야.’
새삼 깨닫는 것이지만, 어른으로써의 존경과 사람으로써의 존경은 다른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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