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
1.
어느 조직이든 단독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도 포함되며, 더 나아가 이성적이며 비즈니스적인 면모가 강한 기업에서 더욱 돋보이는 이치였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자신이 손대고 싶지 않은 일, 혼자가 아닌 다수가 필요한 일까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첫째가 인맥이고, 둘째가 자금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와의 연결은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실크가 카이저에게 입힌 타격은 결코 적지 않았다.
카이저의 팔 다리를 잘라내는 행위는, 녀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당신네들과 달리 실크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그러니 거래는 취소하도록 하지.”
“우리보고 자살이라도 하라는 말이야? 절대 안해!”
“그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말인가.”
공포의 상징이었던 카이저는 아비도스에서 다른 의미로 모두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카이저와 손을 잡는 자에겐 실크가 찾아간다.
그 사실이 아비도스에 알려진 탓이었다.
카이저는 분노하며 아비도스 자치구에서 자신들과 척을 지고도 뒷 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며 경고했으나, 그들에게 더욱 큰 공포는 따로 있었으니.
“하. 그딴 경고가 우리한테 통할거 같나요. 그러는 당신네들은 그 실크를 쓰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
누구 한 명의 일침에도 PMC의 이사는 어째서인지 마땅한 반박을 내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말문이 절로 막히는 이사를 두고 한때 카이저에 협력했던 모두가 떠나갔다.
그렇게 카이저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었던 이들을 잃었다. 마음만으론 PMC의 병력 모두를 이끌고 실크에게 전면전을 내걸고 싶었으나…….
“망할!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그런 선택이야말로 진정한 자살이었기에.
이사는 그저 한탄스러운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 너희같은 쓰레기들에겐 기대조차 안했다. 애시당초 수준 낮은 놈들을 부려선 안됐던 거야.”
원작과는 결이 다른 상황이었지만, PMC의 이사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원작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이번 보이콧 사태를 두고 고용한 녀석들의 수준이 낮아서 생긴 문제로 판단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론지었다.
“베테랑을 고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일개 용역이나 헬멧단이 아닌, 이름 알려진 해결사나 흥신소 녀석들을 이용한다면 해결되리라.
그는 여전히 야망을 버릴 생각이 없었기에 기존에 뜯겨나간 팔 다리를 새로 교체할 생각을 품었다.
…
…
…
허나,
PMC 이사가 알지 못하는 바가 있었으니.
“카이저에서의 의뢰라고? 거절해버려.”
“…그래도 되겠어, 사장?”
“훗. 우리가 추구하는 무법자의 길에는 타인의 도움따윈 필요없어.”
“그냥 아루 쨩이 실크를 좋아해서 그런건 아니고?”
“무,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무츠키 실장, 회사에선 사장님이라고 말해야지!”
“알겠어, 아루 쨩!”
“아루 쨩이 아니라 사장님!”
그들이 고용하려던 베테랑이라 불리우는 이들은 남들보다 도시의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이기에 베테랑이 되었다는 것.
더 나아가, 그럴만한 실력을 지녔기에 베테랑이 된 만큼 괜한 위험요소를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
위기를 감지하고, 자신이 있을 자리를 잘 아는 것만으로도 이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이름 알릴 수 있는 덕목인 법이었다.
“그, 그래도 보수가 엄청나네요…. 야, 약간은 아쉬울지도 모르겠어요…….”
“뭐, 그렇긴 한데 나도 이 의뢰는 거절하는 게 좋아보이네. 보수는 높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사장이 좋아하는 실크와 적대하고 싶지도 않고.”
“그, 그런게 아니라니까! 후후, 무법자의 길은 언제나 고고하고 고독한 법, 그러니 카이저의 의뢰를 받지 않는거야. …딱히 실크와는 상관이 없다고!”
또한, 베테랑으로 알려진 이들 대부분이 ‘실크’를 크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들이 있었기에 베테랑이라 불리는 이들이 카이저 PMC의 의뢰를 거절한 것이다.
괜히 보수만 보고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경험을 겪고 싶은 해결사는 이 도시에 없었다.
“크아아아악! 왜 아무도 의뢰를 받지 않는 것이냐!!”
그에 PMC의 이사가 크게 울부짖었지만, 그것은 딱히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일이리라.
…
…
…
“……뭐라고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 선배. 다시 말해주실래요?”
[으음. 카이저 코퍼레이션에 의뢰가 들어왔네요?]
“…저한테요?”
[흐흫. 네. 해결사 무명(無名)을 지명해서요.]
“오…….”
나쁜 말을 싫어하는 히마리가 들을까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만, 절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얘네 병… 아니, 뭐하는 새끼들이지.
2.
“대단한 새끼들이네, 이거.”
“음? 무슨 일 있으신가요, 당신?”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에 미친놈이 많다는걸 새삼 깨달아서 그랬어.”
새삼 카이저가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깨달았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 녀석들이 현재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건 알만한 사람은 알겠다.
“……대놓고 지랄을 하는구나, 아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야망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포기하지 않고 아비도스를 압박하고자 기를 쓰는 모습. 자신들이 계획했던 모든게 수포로 돌아갔음에도 어떻게든 발악하는 모습이었다.
‘세리카가 납치되는 일은 사라졌고, 아비도스를 공격하는 불량학생도 없어졌다. 흥신소 애들은… 모르겠네. 돈이 부족해서 카이저의 의뢰를 받을지도.’
다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흥신소가 보수를 벌기 위해서 온갖 의뢰를 받는다는걸 알지만 그녀들은 결코 악한 이들이 아니기에.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금세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애들이었으니.
‘혹시 모르지.’
내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을 알아채고 애시당초 카이저에 접근하지 않았을수도. 놀라울 정도로 위기 감지에 뛰어난 아이들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흥신소나 다른 해결사들이 아닌 카이저가 보이는 기이한 행보였다.
사실상 운용할 수 있는 패가 전무해진 상황에서도 카이저는 자신들의 야망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부터가 중요하리라.
“와카모. 이제부터 할 일을 알려줄게.”
“네, 당신.”
“지금부터 우리는 갈라져서 활동할거야. 나는 일반 학생의 신분이랑 실크의 신분을 동시에 운용하면서 아비도스 학생들과 함께할거고, 너는…….”
금빛 눈동자를 똘망똘망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와카모.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다른 한손으로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내용들을 참고해서 조사를 진행해줘.”
“네, 알았답니다.”
“아마 머지않아서 너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거야. 그때까지 잡아놓은 숙소에서 쉬면서 기다려줘.”
사이드킥으로써의 와카모는 요 며칠간의 활동으로 도시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제대로 된 활동은 D.U나 밀레니엄에 돌아간 뒤에 이어서 해도 늦지 않으리라. 이번 스토리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대책위원회 아이들이었으니.
“후후, 이렇게나 절 필요로 해주시다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심전력을 다하겠어요.”
“응, 고마워. 와카모.”
나는 와카모와 가볍게 포옹을 나눈 뒤 헤어지게 되었고, 모모톡으로 호시노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제 내가 그곳으로 가겠노라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자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해냈다.
이제 남은건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들의 조율이다.
대책위원회와 함께,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가리라.
3.
“히이로 씨가 돌아온다고요?”
“와아-☆ 일주일 만에 다시 보네요!”
히이로가 다시금 아비도스로 돌아온다는 말에 대책위원회 멤버들의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히, 히이로가 온다고? 정말로……?!”
“응. 방금 호시노 선배에게 연락이 왔었어.”
일주일 전에 처음 만났던 밀레니엄 출신의 학생.
다소 사나워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순박하고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소녀인 ‘나나시 히이로’.
그녀는 선생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자신들을 아비도스의 학생회로 인정해주었고, 더 나아가 진심으로 자신들과 ‘친구’가 되기도 한 소녀였다.
유독 경계심이 짙던 세리카나 호시노마저도 금세 함락될 정도로 매력이 넘치던 아이, 그것이 히이로에 관한 모두의 평가였다.
“오. 너희들도 히이로를 알고 있었구나?”
“어? 선생님께서도 아는 분이신가요?”
그리고 이는, 선생이 내린 평가와도 비슷했기에.
그들은 의외의 부분에서 공통점을 느끼게 되자 신기하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생과 대책위원회는 각자 히이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공감대를 나누었고,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저번에 말했던 나중에 올 학생이 ‘히이로’를 말하는 거였다고……?”
“응. 나도 히이로가 너희들이랑 먼저 만났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 하하, 행동력이 엄청난 아이구나.”
“……그렇긴 하지.”
순간, 세리카는 자신의 귀를 매만지던 히이로를 떠올리곤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쓸데없이 행동력이 좋은 아이긴 했다.
“그렇다면 선생이 히이로가 말했던 활동을 보증해주는 ‘어른’인 거구나.”
“응. 그렇게 되는 셈이지.”
“……흐응. 그렇구나.”
히이로라는 공통점이 있던 탓일까.
본래 선생을 경계하고 있던 세리카였지만 히이로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그녀는 선생에 관한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히이로가 찾아가서 부탁한 어른이라면, 아주 약간만큼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해서.
선생에 관한 약간의 호기심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세리카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호시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 온대? 호시노 선배.”
“으응~? 아마…….”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뜸을 들이던 호시노는 미소지으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뭣-”
드르륵-!
순간, 대책위원회의 회의실 문이 열리며 백발에 청안을 지닌 청순한 소녀가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 몸, 강림.”
활기찬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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