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
1.
콰앙─!!
폭발음과 함께 모래폭풍이 치솟는다.
공기를 더럽히는 배기음과 파편 소리가 가득 퍼졌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모래와 먼지에 휘말린 사람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헬멧단의 웃음 소리, 그리고 연이어 울려퍼지는 총성.
“어휴, 또 지랄이구먼.”
“이 동네를 빨리 뜨든가 해야지, 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입에선 언제나 불평이 쏟아진다.
물론, 그 누구도 사건에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멀리서 혀만 차는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서 멋대로 나섰다고 칭찬해주는 이도, 보상을 해주는 이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삶만 더욱 궁핍해질 뿐이었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사막처럼 변해버렸군.”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마스터 시바는 그리 평했다.
도시가 무너지니 사람들의 일상도 무너졌다. 일상이 팍팍해지니, 사람들의 마음에도 재해가 들어섰다.
인심은 사라지고, 그저 각자도생을 위해 이기심을 그 속에 담는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아비도스의 붕괴는 곧 시민들의 성정을 변화시켰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무너졌는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의문. 마스터 시바의 머릿속엔 그런 문장만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한탄스러울 뿐이지.”
“확실히, 문제가 심각하긴 하네요.”
마스터 시바의 중얼거림에 답한건 그의 앞에서 라멘을 흡입하던 한 소녀였다.
그녀는 가게 바깥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더니 헛웃음을 내뱉곤 턱을 괸 채로 중얼거렸다.
“해결할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요.”
“……우리 아비도스에 꽤 관심이 많은 모양이로군?”
“그럼요. 안 그랬으면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죠.”
“확실히 그렇군.”
소녀의 당찬 대답에 마스터 시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썬 매번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고마울 뿐이었는데, 오늘로 고마운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자신이 사는 곳에 관심을 가져주는 타 학원 학생이라. 꽤나 기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그래서, 다른 학원의 학생으로써 우리 아비도스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가?”
“미래, 말인가요?”
“음. 아무래도 라멘이나 마는 나보다는 많은 걸 배우는 학생이니 그쪽의 시선도 궁금해져서 말이지.”
“그런 것치곤 사장님도 식견이 매우 뛰어나 보이시던데요.”
“뭐, 그건 오래 살면서 얻은 지혜인 거지.”
마스터 시바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하, 하고 추임새를 넣은 소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씁쓸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이건 신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다만…….”
“다만?”
소녀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비도스가 어떤 곳이던가.
자유를 추구하며 충동적인 성정의 학생들로 인해 무법지대라 평가받던 게헨나와 달리,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법이 기능하지 않아 무법지대가 된 아비도스에는 언제나 사고가 가득했다.
블랙마켓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 정부의 역할을 수행할 학원이 사실상 소멸한 상태라는 점, 그리고 카이저의 개입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사라졌다는 점.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재해로 인한 몰락이었으나 차후 복구가 불가능할 지경이 된 원인은 인류였으니.
그런 점들이 모여들어 아비도스는 생텀타워가 복구되었음에도 무정부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소가 되었고, 총학생회마저 시선을 돌리게 될 정도로 심각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비관적인 결론을 낼 것이 분명하다.
대체 어느 누가 이 상황을 뒤집겠는가.
하지만.
소녀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무언가 확신에 찬 듯한 표정으로, 당차게 웃으며.
“적어도 이 이상으로 추락하진 않겠네요.”
“……음?”
마스터 시바는 다소 생소한 의견이라 생각했다.
아비도스 소속의 학생이나, 시민이 아니라면 아비도스의 상황을 두고도 희망을 품는게 쉽지 않았기에.
그것도, 그 무엇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밀레니엄의 학생이 저런 평가를?
마스터 시바는 눈앞의 소녀가 사실 듣기 좋은 말만을 내뱉는 아이가 아닐까, 순간 의심이 들었다.
허나, 이어진 소녀의 말에 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가 그렇게 만들거니까요.”
“…학생이?”
당혹스러운 이야기다. 허세나, 몽상에 가까운 이야기.
하지만 어째서 저 소녀의 눈빛에는 저렇게나 확신이, 신념이 가득 차 있는가.
그야말로 의문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소녀는 마스터 시바의 물음에 이리 답했다.
“그것이, 제가 이곳에 온 이유니까요.”
콰아아앙─!!
소녀의 선언이 내뱉어진 직후, 가게 바깥의 상황이 돌변하였음을 알리는 굉음이 울러펴졌다.
마스터 시바는 놀란 눈빛으로 가게 바깥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검은 여우 가면’을 쓴 검은 머리의 소녀가,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벌하는 모습이 펼쳐진 것.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만 한 가면을 쓰고있는 소녀가 휘두르는 정의의 철퇴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악을 벌하고, 시민을 구하며, 정의를 세운다.
어딘가 익숙한, 키보토스에서 가장 유명한 누군가가 전파시켰던 ‘정의’의 표상이 그곳에서 펼쳐졌다.
마스터 시바는 순간, 실크가 다른 복장이라도 입고 온 것일까 하며 의문을 품었으나-
“정확히는, ‘저희’가 그렇게 만들겁니다.”
바로 곁에서 들려온 소녀의, 아니 소녀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목소리에 의문을 품었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마스터 시바의 얼굴엔 경악과 충격이라 표현될만한 것이 자리잡았다.
왜냐하면, 그곳엔.
“시, 실크?”
키보토스의 모두가 기억하는 영웅, ‘실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라멘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종종 놀러올게요.”
“아, 아니 이게 무슨?”
“이제부터 지켜봐 주세요. 몸 조심하시고요.”
하얀 가면을 쓴 영웅이 가게 밖으로 나선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마스터 시바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
그리고 동시에.
어째서인지 영웅의 등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며 그는 웃음을 흘렸다.
“허.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아무래도, 늙고 닳았다고 생각했던 자신도 아직까지 동심을 간직하고 있던 모양이다.
2.
“…후우, 그래요. 마음에는 안들지만 한 명이라도 더 전력이 있어야한다는 당신의 의견은 인정하죠.”
“고마워요, 히마리 선배.”
한숨을 내쉬며 와카모와의 협력을 애써 받아들인 히마리의 말에 나는 보답으로 그녀를 한번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겠는데 히마리 선배는 내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 때마다 포옹을 원하시더라고.
‘…근데 동거하게 되었다고도 말해야되나?’
와카모를 유독 불편해하는, 아니 정확히는 미워하는 것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히마리다.
그녀에게 와카모가 당분간 내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게 나을까?
‘으음.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번 일 끝나고.’
괜히 바쁜 상황에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히마리에게 한가지 비밀을 더 만들어버린 히이로였지만, 그녀는 그것이 악수임을 몰랐다.
이 선택의 대가는 나중에 치르게 되리라.
“이제부터 저와 베리타스는 히이로를 최선을 다해 보조할 생각이에요. 전투에서든, 다른 분야에서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력을 해드릴게요.”
베리타스의 해킹 실력과 히마리의 실력까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현실에서의 힘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으로도 확장된 셈이었다.
밀레니엄 최고의 해커들이 도와준다면 그야말로 최강의 아군을 둔 셈이나 다름 없었기에.
“고마워요, 선배. 뭔가 매번 받기만 하는거 같네요.”
“흐흥. 고마우면 나중에 보답해주셔야겠네요.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인 저의 도움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구요?”
“그럼요. 언제든지 바라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나는 헤헤 웃으며 히마리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받은 도움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히마리가 바라는 건 뭐든 들어줄 생각이다.
쇠약한 몸으로도 항상 도와주는 게 고마웠기에.
“……뭐든지, 인가요?”
“네. 제가 가능한 거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뭐든지, 뭐든지…. 흐흫…….”
그렇기에 뭐로든 보답하겠다 말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히마리의 눈동자가 살벌하다.
뭔가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배?”
“…아. 흠흠!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것보다 계획을 다시금 점검하도록 하죠.”
“넹.”
우리가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카이저는 예상한 대로 내가 아비도스를 떠난 시기를 틈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 그 틈을 찔러넣어 카이저를 압박함과 동시에 아비도스를 카이저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모든 채무를 탕감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강제적으로 학원과 자치구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불가능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원작의 해피엔딩을 목표로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고, 두 번째 목표는─.
“데카그라마톤 비나의 처치, 맞나요?”
“네.”
사전 조사를 위해 아비도스에 들렀을 시기에 관측해놓은 자료에 따르면 아비도스 사막 아래에서 비나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카이저 PMC의 데카그라마톤 대대가 움직임을 개시했다는 사실도 알아냈기에.
“정확한 활동 개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조만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이는 비나의 활동 패턴 및 행동 양상을 조사한 자료와, 카이저의 자료를 해킹해서 얻어낸 자료를 토대로 결론 지은 내용이었다.
비나는 언제나 일정한 시기와 파장을 내비치며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조심하세요. 비나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더라도 그 존재의 강력함은 그 누구도 한계를 알지 못했어요.”
“항상 유념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하세요.”
“잘 다녀와-”
히마리와 에이미의 배웅을 뒤로하고 동아리실을 나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비도스로 향할 시간이었다.
“해보자고.”
첫 번째 메인스토리, 시작이었다.
3.
실크가 다시 아비도스에 나타났다.
이 소식은 머지않아 아비도스 전역은 물론이요, 키보토스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이르렀다.
실크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던 각 학원의 대표 세력은 물론이고, 총학생회나 온갖 군소조직마저도 실크가 다시금 아비도스로 향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누군가는 실크가 또 무슨 일을 하게 될까 기대했고,
또 누군가는 실크의 손길이 자신에게도 닿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으며,
어떤 누군가는 그저 실크의 행보를 응원하였다.
키보토스의 모두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실크다! 실크가 왔어요, 여러분!”
“역시 다시 되돌아올 줄 알았다니까!”
이는 똑같이 소식을 접한 아비도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야네와 세리카는 실크의 등장에 환호하였고.
“…응. 역시 만나보고 싶은 상대.”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분명 멋진 분이시겠죠?”
시로코와 노노미는 실크에 대한 흥미를 드러냈으며.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뉴스를 시청하던 나머지 두 명, 호시노와 선생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선생의 경우,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흥미를 드러내는 것은 같았으나 그 결은 영웅에 대한 동경심이나 기대보다는 어떤 학생인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대단한데? 용기가 엄청나네.”
위험천만한 행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선생의 입장으로써 꾸짖을 일이지만, 선생은 그저 악을 벌하고 선을 실현시키는 실크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절대로 거미줄로 건물 사이를 날면서 적들을 쓰러뜨리는, 남자의 마음을 울리는 멋진 모습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호시노는.
“으헤…….”
평소처럼 나른한 모습을 취했으나, 전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명백하게 뉴스 속 실크에 닿아있었다.
그녀의 오드아이는 고요히 빛나며 실크를 담았다.
‘신기한 후배란 말이지. 정체가 뭘까, 도대체.’
어째서 그녀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알고 있었을까.
어째서 그녀는 자신에게 경고를 한 것일까.
왜 나를,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일까.
호시노는 실크를 보며 의문을 품었지만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속에서 맴도는 한 가지 단어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상기시킬 뿐이었다.
희생(犧牲).
이라는, 실크가 꺼냈던 단어를 말이다.
“무슨 의미였을까나~?”
언젠가는 해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면서 호시노는 고민을 접기로 하였다.
그리곤 평소처럼 나른하게 책상에 엎드렸다.
이렇게 오늘도 평범한 아비도스의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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