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9
1.
히어로 슈트. 혹은 히어로 코스튬.
슈퍼히어로가 활동을 할 때 착용하는 일종의 아이덴티티로, 그 영웅을 상징하는 일종의 심볼로도 작용하는 물건이기도 한 것이 바로 코스튬이었다.
오래 전부터 히어로 코스튬은 대부분 스판덱스, 간단히 말해 쫄쫄이나 타이츠 재질로 제작하여 착용하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현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재질과 다양한 형태의 코스튬로 분화되었다.
근본적으로 1900년대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착용했던 스판덱스 재질의 슈트로 시작해 아이언맨과 다른 히어로들의 수많은 재질의 슈트에 이르기까지.
이제 코스튬은 단순히 복장으로써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무기나 장비로도 작용한다. 그렇기에 히어로에게 슈트- 코스튬이란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히어로 코스튬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단순히 쫄쫄이를 입고싶지 않다는 이유도 한몫 하겠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긴 시간동안 착용할 물건이라면 더 실용적이고 기능적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그렇게 긴 고민 끝에 제작하게 된 코스튬.
이제는 실크의 상징이 될 복장이 완성되었고.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시착해보았다.
다름아닌 디펜더스 멤버들 앞에서 말이다.
“어때요?”
내가 착용하고 나온 슈트는 대체적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형태로, 대체적으로 새하얀 배색에 푸른색 줄무늬가 새겨진 모습이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마블의 블랙위도우가 착용했던 복장과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동성에 특화시키기 위해 슬림한 형태로 구성된 전신 슈트. 밀레니엄의 최첨단 기술이 적합되어 파워드 슈트를 간소화한 형태로- 일종의 강화복의 일종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여러 부분에서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래도 몸매가 좀 드러나긴 하네.’
물론 쫄쫄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몸매가 나름 부각되는 복장이긴 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기에 그리 불편함은 없었다.
애시당초 이 이상으로 복장을 두껍게하거나 팔랑거리게 만든다면 슈트로써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적당히 얇고, 적당히 달라붙는 정도?
몸매는 뭐 평소대로 코트로 가리면 되는 일이지.
내가 히비키가 제작해준 슈트를 착용하고 내린 평가는 그러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모두의 앞에서 슈트를 첫 선보인 순간, 모두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
“…잘 어울리네요, 히이로.”
“이야, 이쁜데?”
“와, 히이로 너무 이쁘다!”
“헤헤.”
그녀들은 모두 좋은 평가를 내려주었다.
뭔가 어린아이가 하는 재롱잔치를 칭찬하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기에 나도 기쁘게 웃으며 연신 몸을 돌려가며 복장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몇분을 돌아보며 구경하길 잠시, 한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바로 슈트의 기능성에 대한 것.
전투나 이동만큼 격렬한 활동을 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구성과 신축성 등의 기능들이다.
그렇기에 어디까지 복장이 버틸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몸을 쭉쭉 늘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을 위로 쭈욱 뻗기도 하고,
다리를 일자로 뻗어 곡예와 같은 자세를 잡거나,
거미줄로 천장에 매달려 여러 기예를 선보인다.
그러던 도중, 뭔가 곁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뭔가 이상해져있음을 알았다.
“…….”
“…….”
“? 다들 왜 그래요?”
여자의 몸이 이렇게나 유연하구나- 라는걸 실감하며 팔과 다리를 쭉쭉 뻗고있었을 뿐인데 저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있었나?
그 뭐랄까,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듯한 표정?
“나 뭔가 이상했나?”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요?”
근데 표정들이 왜 그래.
내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고 있을 순간.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에이미가 입을 열었고-
“히이로 너, 너무 야한거 아니-”
“조용히 하세요, 에이미! 후후….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히이로?”
바로 히마리에게 침몰당했다.
“그, 그래요……?”
방금 야하다고 하지 않았나.
내 행동에 어디가 그런 부분이 있었지?
전혀 모르겠다.
‘으음?’
히마리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거 보면 아닌거 같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스트를 이어나갔다.
아직 제대로 된 기능들은 탑재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능력들 대부분은 탑재된 프로토타입.
그것이 우타하와 히비키가 한 설명이었다. 파워드 슈트의 강화 기능과 방탄 기능, 그리고 통풍이나 ‘비전’과의 연동 등의 기능들이 기본적으로 탑재된 상태.
‘일단은 이 정도로도 만족스러워.’
지금은 엔지니어부가 처리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상태였기에 일단은 이 상태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스파이더맨도 활동 초기에는 추가적인 기능 없이 순정 상태인 슈트로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던가.
원래 순정이 낭만인 법이다.
“최고에요! 제가 생각한 그대로에요…!”
“그래? 다행이야.”
“정말 고마워요, 히비키!”
많이 고생했는지 다크서클이 내리앉은 히비키의 모습에 나는 고생했다며 그녀를 품에 폭 안아주었다.
히어로 슈트를 입은 상태였지만 여자끼리인데 상관없으리라- 하면서 말이다.
“으읏…?!”
“제가 맛있는거 사드릴게요. 물론! 오늘은 푹 쉬고 다음에 약속 잡아요. 그때 같이 시내나 돌아다녀요.”
“으응…. 알겠어…….”
늘어지는 말투로 대답하는 히비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놓아주자 돌연 히비키에게서 ‘아-’ 하며 뭔가 아쉬운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숨이 막혔던 것일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나지만 이내 옆에서 흠흠! 하며 헛기침 소리가 났다.
“히마리 선배?”
“흠흠. 히이로? 저의 노고도 잊으시면 안된답니다?”
“……예?”
순간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히마리는 약간 얼굴을 붉히는 모습. 거기서 몇 초간 멈칫하더니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행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눈물을 닦는 듯한 시늉.
“흑흑. 저같은 밀레니엄의 절벽 위의 꽃이자 미목수려한 미소녀를 마음껏 부려먹으시곤 쓸모가 없어지니 버리시는건가요? 매정한 사람이시군요, 히이로는.”
“아, 아니. 그, 왜 그러세요. 선배…….”
진짜 왜 이러는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내가 당황하면서 히마리에게 원하는게 뭐냐고 묻자, 그녀는 붉은 얼굴로 양팔만 활짝 벌릴 뿐이었다.
마치, 자신도 안아달라는 듯이.
“…….”
“…….”
우리는 침묵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히마리가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자각이 있는지 고개를 휙 돌려버렸지만 말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히마리에게 다가갔다.
“항상 감사해요, 선배. 언제나 저를 챙겨주셔서.”
“후후. 저야말로 언제나 감사하고 있답니다.”
으음. 묘하게 낯간지러운 분위기다.
이런거 버티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쓰게웃으며 히마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숨결이 닿아 간지러웠는지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도 어딘가 만족스러운 히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흠. …나쁘지 않네요, 이런 것도.”
히마리를 더욱 강하게 안아주자 그녀는 낮게 웃음을 흘리더니 기쁘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이런게 좋은건가? 그, 여자들끼리는 자주 껴안거나 손을 잡기도 한다고하던데.
아무래도 남자의 감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리감이나 그런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해는 잘 안되지만.
정확히는 몰라도, 이것도 나름 그녀들의 애정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흠흠. 저는 이걸로 만족하도록 하죠.”
“그, 그렇습니까.”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거 같았기에 나는 어색하게 답하며 히마리에게서 떨어졌다.
그렇게 히어로 슈트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2.
키보토스는 내가 살아가던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간단한 상식, 환경의 모습, 그리고 일상까지.
내가 알던 학생들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모습들. 이는 내가 진정한 의미로 빙의하게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괴리감에 적응하는 것.
그것 또한 빙의자가 가지는 고충이리라.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지식과 상식, 그리고 역사에 이르기까지.
히어로 활동을 수행하면서 키보토스의 주민으로써 행동하기 위해서 숙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노력을 거친 끝에 나는 어엿한 한 명의 주민이자 학생으로써 보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학생은 어디에서 왔어?”
지금처럼. 누군가가 보았을 때 학생이구나- 싶을 정도로 학생다운 모양새가 된 것이다.
나는 내게 질문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답했다.
“밀레니엄에서 왔어요.”
“오. 먼 곳에서 왔구만. 근데 이런 장소까지는 뭐하러 온거야? 여긴 온통 모래밖에 없는데 말야.”
“동아리 활동 때문에 왔어요. 그 외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몇 명 있어서요.”
“그렇구만. 열심히 하라고. 배고프면 언제든지 찾아오고. 항상 맛있는 라멘으로 대접할테니까.”
내게 질문하던 상대방- 시바세키 라멘집의 사장인 ‘마스터 시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말했다.
기억하던 대로 대인배적인 모습이다. 이러니 대책위원회나 흥신소 애들도 좋아하는 것이겠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마주답했다.
“감사해요. 여기 라멘, 정말 맛있어서 단골될거 같은데요? 앞으로도 자주 올게요.”
“하하! 고마운 말이구만. 나야 고맙지.”
게임 속에서나 등장하던 식당, 나중에는 흥신소에 의해 폭발해버리는 곳이었기에 사전에 들러서 인기있는 메뉴를 시켜서 먹어보았다.
맛은, 묘사된대로 맛있었다.
라멘을 많이 먹어본건 아니지만 살면서 먹어본 것들 중에서는 제일 맛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래, 잘 가고.”
순식간에 한그릇을 비운 나는 마스터 시바에게 값을 치루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길바닥에 널려있는 모래와 이미 망해버린 수많은 상권들.
“허.”
게헨나가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해서 거리에 가게들이 별로 없다면, 아비도스는 그냥 사람 자체가 없어서 상권이 발달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물론 자치구의 중심지에는 아직도 사람이 많이 남아있긴 했지만 다른 자치구와 비교하면 그것도 현저히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었다.
“…심각하구만.”
내가 아비도스를 두고 내린 평가다.
자치구의 행정권은 마비되었고, 인구는 점차 줄어들며, 더 나아가 사막화와 모래 폭풍은 끊임없이 발생하여 아비도스를 위협하고 있다.
히마리의 표현대로- 아비도스는 아직 무정부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치구라고 할 수 있었다.
생텀타워의 여부에 따른 문제가 아닌, 자치구를 관리할 학원이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학원의 기능이 멈추자 행정권이 멈추며, 행정권이 멈추니 자치구는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걷는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샬레의 선생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선생이 아비도스까지 찾아온 이유는 하나 뿐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들을 도왔다.
지극히 낙관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 자치구를 지킨다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선생이란 학생들을 모두 도와주는 존재라고 말을 하듯이 말이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비합리적이라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선생이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은 것이겠지, 라고.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사람을 구하는데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겠어?”
애초에 영웅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연원이 뭐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그 행위에 대한 칭송적인 의미로 영웅이라는 단어가 생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상, 마찬가지로 행할 뿐이다. 그게 영웅이니까.
아비도스를 구한다.
그저 그 뿐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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