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0
1.
뽀득, 뽀득.
쓱싹, 쓱싹.
“음! 깨끗하네!”
길게 뻗은 베이지색 머리칼과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청순한 모습의 소녀가 깔끔해진 부실을 보며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부실에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를 한 것이 한없이 상쾌하다는 듯이.
“아스나 선배, 여기도 정리 끝났어.”
“좋아! 빨리 마무리하자”
그녀의 곁에서 청소를 함께하는 이, 검은 머리칼에 어두운 피부, 금빛 눈동자가 돋보이는 마찬가지로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쿨한 인상의 소녀가 대답했다.
빛과 어둠처럼 각기 상반되는 매력을 지닌 두 소녀, ‘이치노세 아스나’와 ‘카쿠다테 카린’.
두 사람은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며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부실 청소를 빠르게 실행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부실 청소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을 무렵,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부실의 문이 열렸다.
아스나와 카린의 시선이 절로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가고, 이내 두 사람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부장!”
“네루 선배, 그리고 아카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아닌 그녀들이 속한 동아리 C&C의 부장인 ‘미카모 네루’와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 소녀 ‘무로카사 아카네’였으니까.
네루는 평소대로 불량한 걸음걸이로, 아카네는 언제나처럼 정숙한 걸음으로 부실로 들어오는 모습.
마찬가지로 상반된 모습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겐 한없이 익숙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여, 먼저 하고 있었냐?”
“두 사람 모두, 많이 기다리셨죠?”
“부~장-!”
“으앗! 아스나, 놀랐잖아. 임마!”
그리고 평소대로 부장을 향해 힘껏 몸을 던지며 껴안는 아스나의 모습까지도.
“리오 회장이랑 이야기 잘 나누고 왔어?”
“어. 그러니까 빨리 떨어져. 무겁다.”
“그럼 청소 빨리 끝내고 나랑 놀자-! 응?”
“하아, 귀찮게스리…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거 놔라.”
아스나의 품, 정확히는 대흉근에 파묻힌 네루가 귀찮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이 곧바로 멀어지는 아스나.
그 모습에 네루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 카린과 아카네는 작게 미소지었다.
“자, 빠르게 정리하자! 할 이야기 많으니까!”
“오케이! 부장!”
“예, 네루 선배.”
“응, 부장.”
C&C. 정확한 명칭으로는 ‘Cleaning & Clearing’.
메이드복을 입고 활동하는 것이 동아리의 원칙인 만큼 ‘청소’에 있어 진심인 그들이었다.
부장인 네루의 지시에 따라 부원들은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빠른 속도로 부실에 쌓인 먼지와 때를 소탕해가기 시작했다.
2.
“며칠 부실을 비웠다고 먼지가 많이도 쌓였구만.”
“그러게요. 잠복 수사를 해야할 정도로 은밀히 수행해야 하는 의뢰였으니 어쩔 수 없겠죠.”
“아하하! 그래도 결국 마지막엔 전부 터뜨려버렸지만!”
“음. 결과적으로 실패하진 않았으니까.”
장장 한시간 반에 걸쳐서 부실의 청소를 모두 끝낸 C&C의 멤버들은 카린이 우려낸 차와 아카네가 가져온 다과를 맛보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직전까지 수행하고 오던 작전, 최근 관심사, 이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이나 강아지에 대한 것까지.
밀레니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있는 특작부대 C&C이지만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는 대체로 일반적인 키보토스 여고생의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곰탱이 같은 녀석. 꼬맹이 같은 말이나 지껄이고 말이야. 머리에 몇방 더 쏴줬어야 하는데.”
“후훗! 그때 리더, 엄청나게 무서웠지! 내가 고작 몇 녀석만 제압할 동안 열 명이 넘는 적들을 제압하고!”
“요인이 도망치려고 할때는 정말 곤란했는데, 카린이 타이밍 좋게 저격해주어서 살았어요.”
“원래 저격이 내 역할이니까. 그래도, 단숨에 제압시키지 못하고 두 발이나 발사한건 조금 아쉬웠지.”
…물론, 이따금 특작부대에 걸맞는 살벌한 대화를 나누게 될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러한 측면 모두가 그들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많지 않은 휴일인 만큼, 그 평화를 만끽하겠다는 듯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무렵이었다. 아스나가 뭔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이 큰 소리를 낸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온다고 하지 않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스나는 눈동자를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네루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가르마 진 머리칼 사이로 그 빛이 투과될 정도로 아주 강렬한 눈빛에 네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앙? 대체 뭘 말하는거야?”
“전에 부장이 말했던 사람! 이번에 우리랑 같이 의뢰한다면서? 정말이야? 그, 전에 부장이 ‘다시 싸워보고 싶네’ 라면서 말했던 사람 말이야!”
“……아.”
아스나의 구체적인 설명에 네루는 깨달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내더니 이내 쓰게 웃어보였다.
“분명, 그랬었지.”
“나 궁금해! 어떤 사람이야?”
“저도 조금 궁금하네요. 전에는 경향이 없어서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으니까요.”
“나도.”
새로 던져진 주제에 물고기 때처럼 몰려든 부원들을 바라보며 네루는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간략하게 주제의 주인공에 대한 평을 내렸다.
“지독하다? 제정신이 아니다? 뭐 그런 느낌이지.”
“…부장. 너무 생략된거 아닌가요.”
“으음.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는걸.”
“아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더 기대되네!”
아주 신랄한 평가를 말이다.
그에 아카네와 카린이 쓴웃음을 짓고, 아스나는 더욱 흥미가 생겼는지 다시금 눈빛을 반짝였다.
말을 꺼낸 네루는 자신이 내린 평가가 어딘가 묘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곧장 정정하고 수정을 하려고 했으나-
“……누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겁니까.”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왓-?!”
“……읏!”
“무슨!”
“으앗, 깜짝아!”
기척도 없이 나타난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자리에서 뛰쳐나가며 자세를 취하는 C&C의 부원들.
1초도 흐르지않은 순간에 전투 자세를 취한 네 사람은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을 눈에 담더니 이내 놀란 표정으로 자세를 풀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자신들에게 공격 태세를 보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딘가 익숙한 모습의 소녀가 그곳에서 태연하게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네루였다.
“너, 너 이 자식! 깜짝 놀랐잖냐, 임마! 노크라도 하고 들어오라고!”
“안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 그만. 그리고 네루 선배가 먼저 제 욕 하셨잖아요.”
“그건……!”
차마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는지 그저 목청을 높이던 네루였지만 이내 헛웃음을 내뱉으며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말문이 막힌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후배의 성장을 본능적으로 실감했기에.
네루는 상쾌히 웃으며 상대에게 말했다.
상대 또한 마주 웃으며 네루의 손을 붙잡았다.
“많이도 강해졌다, 너?”
“예. 하루가 다르게 발전 중이죠. 언젠가 선배도 이겨야 하니까요.”
위협하는 듯한 네루의 말투.
그리고 그를 받아치는 후배의 목소리.
“호오- 건방진 말 하고는. 당장이라도 붙을까? 응?”
“이번엔 지게 되실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앙? 뭐 임마?!”
“이번엔 새 장비도 챙겨왔거든요. 이번엔 안집니다.”
“하? 설마… 등 뒤에 방패가-”
태연하게 네루를 위협하는 백발의 후배.
누가 본다면 아주 경악스러운 대화가 아닐 수 없다.
“저 사람이 그……?”
“뭐야, 뭐야? 부장이랑 엄청 친해보이는데!”
네루와의 대화를 통해 저 후배가 자신들이 방금까지 대화하던 주제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C&C였지만, 그들이 소녀에게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후배가 ‘그’ 부장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과, 후배가 방금 보여주었던 기량의 일부.
“저 아이, 방금 기척도 없이 나타났었죠.”
“응. 맞아.”
“대단하다! 어떻게 한거야?”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신들의 앞에, C&C의 기감을 속였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운 점이었다.
물론 편하게 쉬고 있었던 만큼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후배가 해낸 일은 대단했다.
밀레니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C&C의 멤버들이다. 물론 가장 큰 전력은 부장인 네루였지만 그녀들 또한 한명한명이 다른 학원의 강자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스페셜리스트.
그런 그들에게 기척을 숨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 후배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후후, 나쁘지 않네요.”
“큰 도움이 될거 같아.”
“재밌어보여!”
저 후배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나같이 그녀에게 깊은 ‘흥미’를 품게 되었으니까.
의도치않게 C&C 멤버들의 시선을 끌게 된 그녀였다.
3.
“초현상특무부의 부원, 나나시 히이로라고 합니다.”
“이전에 잠깐 만났었죠? 무로카사 아카네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나는 카쿠다테 카린. 잘 부탁해.”
“이치노세 아스나! 앞으로 잘 부탁해, 히로 쨩!”
“난 소개 생략한다. 대충 알지?”
네루는 기대도 안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려다 방금 아스나가 내뱉었던 의미 모를 단어를 입에 담았다.
방금 뭐라고 한거야.
“히로, 쨩……?”
“응! 히이로는 1학년이지? 난 친한 후배한테는 ‘쨩’ 붙여서 말하거든! 히이로니까, 히로 쨩인거지!”
“으음. 뭐, 상관없긴 하죠. 편한대로 부르세요…….”
우리 벌써 친해진거야? 몰랐는데.
그보다 애니에서 여자들끼리 주고받던 ‘쨩’ 칭호를 내가 불리게 되니까 되게 어색했다.
들어보니까 애칭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하니 쓰지 말라고 하기도 뭐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귀여워!”
내가 어색한 반응을 보이는게 재밌었는지 해맑게 미소짓던 아스나가 나를 품에 안았다. 순식간에 얼굴로 덮쳐오는 거대한 대흉근의 압박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아스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대흉근에 파묻힌 채, 고개만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스나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눈꼬리를 반달처럼 휘더니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눈동자 색이 똑같네? 이쁜 파란색!”
“…그릏습느끄.”
“아하하! 가슴 간지러워!”
전 숨이 안쉬어지는데요.
슬슬 저항하고 싶었지만 아스나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으음…….’
딱히 코를 간질거리는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건 아니었다.
진짜로.
내가 아스나에게서 풀려나게 된 건 그 뒤로 몇분이나 더 아스나에게 껴안기고 난 이후였다.
떼어내려고 해도 계속 달라붙더라. 이래서 아스나를 보고 골댕이라고 하는구나.
“앗!머리가 다 망가졌잖아.내가 고쳐줄게.”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 나한테 맡겨!”
이제 해방됐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를 살피더니 어딘가에서 빗을 가지고 오는 아스나.
그 모습에 나는 쓰게 웃으며 아스나에게 말했다.
“…친화력이 엄청나시네요.”
“그래? 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모두 이래!”
“으음. 맞는 말이지. 아스나는 원래 그런 아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카린의 말이었다.
아스나의 성격은 대충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를 두고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친해져서 나쁠건 없으리라.
나는 대충 그러려니 하며 아스나에게 머리를 맡기고 이제 제대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고자 했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는 이들과의 친목이 아닌 업무적인 대화가 목적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네루 선배.”
“앙? 아스나랑 재밌게 놀던데 갑자기 난 왜?”
“……아닙니다.”
“킥. 아니긴 무슨. 입꼬리가 승천하겠구만.”
아무튼 아닙니다.
나는 표정을 싹 굳히며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꽉 붙잡고 아래로 내렸다. 그런 내 모습에 더욱 살벌하게 미소를 머금는 네루의 모습이 보였다.
짓궂은 표정을 짓는거 보니 일부러다. 저 인간.
나는 살짝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이를 꽉 물으며 네루에게 물었다.
“크흠. 그것보다 빨리 알려주세요.”
“뭐를?”
“이번 의뢰. 다름아닌 선배가 저를 지명해서 의뢰를 요청하셨다면서요. 그렇게 전해들었는데.”
“하아?”
히마리가 말하길 이번 의뢰는 C&C의 부장이 내게 지명하여 의뢰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내렸는지가 궁금해서, 그리고 무슨 의뢰인지가 궁금해서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대답은 내 예상에서 한참이나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거 나 아닌데. 나도 부탁받은거야.”
“예?”
무슨 하청의 하청같은 소리를.
“우리 학교의 빅시스터께서 너를 궁금해하셔서.”
“빅시스터, 라면. 설마…….”
빅시스터. 다른 학원에선 사용되지 않는 오직 밀레니엄에서만 통용되는 단어였다.
그리고 그 칭호를 지닌 이는 오직 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래. 학생회장인 리오 말이다.”
츠카츠키 리오.
그녀가 나를 고용한 장본인이었다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순간, 나는 격렬하게 동공을 떨 수밖에 없었다. 불길한 상상이 치솟는다.
‘시발, 걸렸-’
“물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마라.”
“……그렇습니까?”
“엉.”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곧장 대답하는 네루.
명확한 대답에 나 또한 표정을 풀어냈지만, 여전히 네루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실력 체크라고 생각해라.”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리오는 날 왜 궁금해하는거야?
내 물음에 네루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태연히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너 자신한테 물어야지, 임마.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빅시스터가 너에 대한 소문을 들을 정도냐고.”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생각해보니 한 게 많은거 같긴 한데.
그래서 더 모르겠다. 뭐 때문에 그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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